ㄱ(30)씨는 지난해 7월1일 서울 노원구청 방호직 9급 공무원 시보로 임용됐다. 구청장실이 있는 5층 복도 책상에 앉아 손님을 응대하거나, 상황실에서 전화를 받는 일 등이 ㄱ씨 업무였다.
출근 사흘째 되던 날, 선배 몇명과 저녁 회식을 했다. 회식을 앞두고 선배들은 당연한 듯 전산시스템에 초과근무 신청을 입력했다. 이 선배들은 회식을 마친 뒤 다시 구청으로 돌아와 지문인식시스템에 퇴근 인증을 했다.
ㄱ씨가 보기에 ‘이상한’ 행동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동 민원상담’ 등 명목으로 출장을 신청하고도 가지 않는 일도 많았고, ㄱ씨에게 가지 않을 출장 신청을 대신 해달라는 선배도 있었다. 출장을 간다더니 사무실에 남아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안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던 ㄱ씨는 가지도 않은 출장을 신청하고, 하지도 않은 초과근무를 입력해 추가 수당을 받는 선배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복싱을 배운다”고 말했더니 ‘구청 근처에서 초과근무 찍고 해야지, 왜 집 근처에서 하니?’라고 되물어본 동료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9일 <한겨레>와 만난 ㄱ씨는 “정식 임용 전 시보 기간이라 부정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청장실 앞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노원구시설관리공단 무기계약직 노조에는 ‘예산이 없어 안 된다’고 하는데, 하지도 않은 초과근무 수당을 받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돈 소중한지 모르는구나”라는 말과 ‘이상한 사람’ 취급이었다.
어느새 ㄱ씨는 조직 안에서 왕따가 돼 있었다. 일부는 외모나 복장을 문제 삼기도 했다. ㄱ씨 일기장에는 ‘각진 것 입지 말고 블라우스를 입는 게 좋지 않겠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왜 남자같이 하고 다니냐’, ‘나는 네가 여자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깜짝 놀란다’는 상급자한테 들었다는 말들이 적혀 있다고 했다. 자신에게 하는 하소연이었던 셈이다.
근무 6개월째인 지난해 12월엔 구청 인사팀장의 면담 호출이 있었다. 다른 인사팀 직원과 ㄱ씨를 면담한 인사팀장은 “민원인과 적극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내방객이 오면 일어서야 하는데 앉아 있었다”며 근무 태도를 문제 삼았다. ㄱ씨가 적극적으로 해명하자 팀장은 면담 태도를 문제 삼아 “공직이 적성에 맞느냐? 조직에서 자기를 원하지 않으면, 임용하지 않으면 되겠냐. 이렇게 되바라진 사람은 처음 봤다. 주변 사람이 다 불편해한다”고 나무랐다. 함께 면담한 인사팀 직원도 “신규(직원)에게 기대하는 ‘그 무엇’이 없다”, “왜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하냐”며 ㄱ씨를 몰아세웠다고 한다.
‘정규 임용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ㄱ씨는 충격을 받고 정신과 진단을 거쳐 두달 동안 휴직원을 냈다. 또 구청 감사실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고, 초과근무·출장 신청 내역과 보안카메라 영상자료를 대조한 뒤 초과근무·출장수당 부정수령이 의심되는 사례를 국민권익위원회와 서울시에 신고했다.
ㄱ씨는 지난 1월 다른 기관 수시 인사교류를 신청했다. 이에 구청 쪽에선 “권익위 신고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취하하고 인사교류를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고 회유에 나섰다고 한다. ㄱ씨는 권익위에 ‘공익신고자 보호’를 신청하기도 했다. 권익위가 공익신고자로 인정하면 소속 기관은 당사자에게 인사상 불이익 등을 줄 수 없게 된다. 권익위는 ㄱ씨가 신분보장 조처로 인사교류를 희망한다는 뜻을 파악한 뒤 노원구청장을 면담해 인사교류 승인 확답을 받았고, 이어 ㄱ씨는 다른 기관으로 전출됐다. ㄱ씨에게 갑질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구청 인사팀장은 “근무 태도가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있어, 면담하다가 감정적으로 발언했다”고 해명했다.
이와 별도로 ㄱ씨가 제기한 구청 직원들의 초과근무·출장수당 부정수령 의혹과 직장 내 괴롭힘 조사는 신고한 지 넉달이 지났지만 아직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ㄱ씨 신고를 직접 접수하고 지난달 권익위 신고 건을 이첩받은 서울시 감사위원회는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해야 하는 사항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처리 기한을 한차례 연기했다. 조사는 최장 6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노원구청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와 관련해 “자체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만 밝혔다.
ㄱ씨는 “공직자로서 부정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 사람은 구제를 받고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은 눈치를 봐야 할 텐데, 조사가 늦어지다 보니 오히려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구조적 문제를 제보했는데도 조사가 진행이 안 되는 것을 보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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