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6일 오전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서 열린 '세종대로 사람숲길 개장식'을 마친 뒤 사람숲길을 둘러보던 중 대금 공연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세종대로사거리에서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1.55km 보행로인 '세종대로 사람숲길'은 지난해 7월 착공해 9개월 만에 완성됐다. 연합뉴스
2006년 40대 중반 젊은 나이에 인구 천만 서울시장에 당선됐던 그는 재선에 성공하고 정치인으로서 거침없는 출셋길을 걸었다. 하지만 무상급식 투표로 허망하게 시장직을 던진 뒤로 10년 동안 여의도 주변을 맴도는 주변인의 삶을 살았다. 2016년(서울 종로), 2020년(서울 광진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한 뒤론 ‘한물간’ 정치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올해 4·7재보궐선거라는 예기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그를 눈여겨보는 이는 별로 없었다. ‘안철수가 입당 안하면 출마’란 이상한 출마선언으로 ‘관종’ 이미지만 강해졌고, 당 안팎에선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여론 100% 반영 경선’이라는 룰을 배경으로 나 후보를 누르고 극적인 승리를 거뒀고, 그 여세를 몰아 본선에서도 압도적인 표 차로 여당 후보를 눌러 10년 만에 다시 서울시장에 복귀했다. 10년이란 세월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강산이 한번 변하는 세월 동안 야인으로 살면서 치고 빠지는 정치 기술이 늘었다는 평가도, 변방으로 밀려나 있던 10년 한이 응어리져 있다는 평가도 있다. 10년 만에 돌아온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달을 짚어봤다.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 시장이 지난달 8일 오전 서울특별시청으로 출근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오 시장은 취임 이틀째인 지난달 9일 첫 간부회의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생계절벽·폐업위기를 감내하는 상황이다. 지금 같은 일률적인 틀어막기식 거리두기는 더 지속하기 어렵다”며 “밤 9시,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하는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방식을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600∼700명대를 기록하는 제4차 대유행의 갈림길에 있던 때, 정부와 달리 ‘나만의 방역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자가검사키트를 활용한 영업규제 완화’라는 그의 구상은 곧바로 벽에 부닥쳤다. 시민들은 ‘왜 하필 유흥업소나 노래방 규제 완화냐’는 의문을, 전문가들은 ‘유전자증폭(PCR)검사보다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는 자가검사키트 활용은 잘못된 판정으로 되레 감염병 확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중앙정부와의 방역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공조 대상인 경기도·인천시도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비판에 오 시장은 자가검사키트 시범도입 대상을 학교와 콜센터 등에서 ‘수정’하고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주말(지난달 17~18일)까지 새로운 방역지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3주가 흐른 지금까지도 새 방역지침은 깜깜 무소식이다.
부동산 정책도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선거운동 기간 오 시장은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며 정부의 규제가 만악의 근원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자신도 지난달 21일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해 실수요가 아닌 아파트 매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강한 규제책을 선보였다. 선거 기간에 규제완화 목소리를 높인 결과 ‘오세훈 효과’로 강남 재건축단지 등 집값이 들썩거리게 됐다는 비판이 힘을 얻어가던 때였다.
오 시장은 “정상적 시장기능을 훼손하는 투기적 행위가 잔존하는 부동산 상황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정상화 공약도, 준비된 정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이에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능한 행정력을 총동원해 부동산 시장 교란행위를 먼저 근절해 나가겠다”고 투기세력의 책임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투기 규제는 규제대로, 주택 공급은 공급대로’ 하겠다는 그의 구상이 현실에서 얼마나 통할 수 있을까? 익명을 요청한 서울시 한 간부는 “재건축 수요가 많았던 강남, 목동, 여의도 이런 곳의 표를 잡으려고 규제완화를 내세울 때부터 집값 급등은 예정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규제와 공급) 두마리 토끼 잡기’는 5∼10년 이상 장기적으론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1년2개월 시장이 목표로 내세울 건 아닌 것 같다”며 “그래서 규제완화를 어떻게 할지 아직 계획조차 못 만들고 있는 상황 아니겠냐”고 말했다. 실제 오 시장이 그렇게 부르짖었던 규제완화의 실체 또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방역과 부동산 모두에서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선보이지는 못했다. 엄밀히 보면 섣불리 대안을 얘기하다 말을 바꾸며 꼬리를 내린 모양새에 가깝다. 하지만 ‘정치인 오세훈’으로서는 잃은 게 별로 없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존재감을 한껏 높이는 효과를 봤고, 보수언론의 옹호 속에서 정책적 부실은 별로 부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박형준 부산시장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한 청와대 점심자리에 참석한 오 시장은 정부의 엄격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이 재건축(주택공급)을 가로막고 있다며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가보라”고 쓴소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부동산 이익을 위해 재건축하면 낭비 아니냐”는 문 대통령의 반박이 이어졌지만, 보수성향 시민들에게 오 시장의 ‘사이다 발언’은 크게 환영받았다.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공시가격 현실화 공동논의를 위한 5개 시·도지사 협의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소속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왼쪽부터), 박형준 부산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이 기념사진을 찍기 앞서 서로 손을 잡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들어서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가장 와보고 싶었던 게 다산콜센터였다. 다산이라는 이름도 내가 작명했다. 나의 시정 철학이 남아 있어 애정과 관심을 가진 곳.”(지난달 12일 다산콜센터 방문)
“공사시간이 길어야 5∼6년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 이상 걸렸다. 상당히 애정을 갖고 시작한 사업인데 늦어졌다. 뭐든지 의지의 문제 아니겠냐”(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도로구조 개선공사 현장 방문)
오 시장의 단골 발언 가운데 하나는 “내가 십년 전에…”라는 추임새다. 자신이 재임했던 10여년 전에 시작했던 서울시 사업이나 정책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며, 자신의 치적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모두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산콜센터는 처음에 민원 급증과 상담원들의 인권침해 등 부작용이 심각했다. (오 시장 발언을 듣고) 박원순 시장 시절 상담매뉴얼 마련, 정규직 전환 등을 통해 정착한 제도인데 모든 걸 자기 공로로 돌리려고 하는 것 같아 황당했다”(서울시 한 공무원) 같은 반응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재임 시절에 집착하는 ‘내가 10년 전에’ 흐름의 백미는, 지난달 22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시장 취임식이었다.
함께 4·7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형준 부산시장이 출근 첫날 시청에서 간소하게 취임식을 치렀고, 전임자인 박원순 시장은 코로나 시즌이 아니었는데도 2011년 자신의 집무실에서 간단히 온라인 취임식을 열었다. 하지만 오 시장은 과거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디자인 서울’ 정책을 상징하는 공간을 취임식 장소로 선택했고, 시기도 실제 취임 2주 뒤로 정해 행사를 미리 준비하도록 했다.
오 시장은 취임식에서 “10여년 전 ‘디자인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시민의 삶을 둘러싼 유무형의 환경을 한단계 높게 디자인해드리고자 했다”며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곳에 다시 와서 취임식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감개무량하다’는 표현 속에 10년간 야인생활 뒤 금의환향했다는 자부심과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들이 복권됐음을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면 무리일까?
오 시장의 자부심도 따지고 보면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디디피가 시민들 사이에 얼마나 활용도가 있는지, 오 시장이 자부하는 대로 세계적인 명소이자 서울시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는지를 두고서는 다른 평가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오 시장의 또다른 역작이라는 세빛둥둥섬도 마찬가지다.
제38대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유튜브’ 화면 갈무리
오세훈 뗄 수 없는 단어 가운데 하나는 ‘무상급식 반대’다. 10년 전 오 시장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던 무상급식 정책을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하며 시민투표를 했고, 그 결과 시장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지난 4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유치원 무상급식을 빠르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기자단 질의·응답에서 “무상급식은 이미 초중고에서 시행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더 완벽하고 균형에 맞는 것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필요하지, 원칙을 강조해서 뭔가 달리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치원 무상급식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급·간식 비용 현실화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전과는 180도 다른 태도를 보였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광화문광장을 두고서도 주변의 예측을 깨는 결정을 내렸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비판적 태도를 보였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공사가 상당 부분 진행되면서 400억원이라는 시민의 세금을 허공에 날릴 수 있다” “가능한 한 행정의 연속성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며 서정협 대행시절 시작된 세종문화회관 앞쪽 도로를 광장에 편입시키는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진보와 보수, 여와 야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는 중에 정파를 뛰어넘는 불편부당한 행정가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과 장례식·분향소 설치 등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당시 서울시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성 인사도 해 ‘민주당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서울시 산하기관 한 관계자는 “광화문광장 결정을 보며, 오 시장이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 별다른 후보가 없는 만큼, 개혁보수 이미지를 강화하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 같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면모는 서울시 내부에서도 나온다. 과거 시장 재임 시절 오 시장의 모멸감을 주는 일방적 리더십과 스타일로 상처받았던 공무원들은 그의 복귀를 불안하게 지켜봤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더란 얘기다.
전임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 고위직을 지낸 한 관계자는 “원래 오 시장은 개혁보수 이미지였는데, 10년 전 무상급식을 반대하면서 ‘찐보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10년간 절치부심하면서 그 부분에 대한 분석이 있었을 것이고, 지난 국민의힘 경선 때 나경원 후보를 큰 차이로 따돌리면서 ‘당내에도 개혁보수에 대한 요구가 더 많구나’하고 깨달았을 것”이라며 “무상급식 반대라는 이미지까지 내던진 데다, 도시재생 같은 박원순 시장 때 인기없는 정책들도 많아 이런 걸 수정만 해도 큰 점수를 먹고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대선 주자로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 또다른 관계자는 “오 시장이 10년 전과는 달리 많이 누그러지고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잘 가다가 갑자기 ‘싸한’ 분위기가 될 때가 있다. 사람은 잘 안변한다는데, ‘(변한 모습이) 얼마나 갈까’ 하는 얘기들을 한다”고 말했다.
김양진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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