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서순라길. 2층 높이 담장 위로 종묘의 거목들이 우뚝 서 있다. 김양진 기자
‘꽉 찬 도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도 새소리에 바람소리까지 들리는 한적한 길이 있었다. 조선시대 왕들의 위패가 있는 종묘 옆 서순라길도 그중 하나다. 지난달 27일 오후 종묘의 높은 담벼락을 따라난 800m 길을 걸었다. 일방통행로를 지나는 차는 물론 평일인 탓에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해 말 서울시의 보행길 재생사업이 마무리된 뒤 사람이 늘어난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한블록 옆 ‘익선동 한옥거리’와는 딴판이었다.
서순라길은 오랜 역사성을 간직한 길이지만, 일반인들이 찾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일본강점기 이후 왕실 권위의 상징하는 종묘 옆에는 판자촌이 들어섰고, 서울시는 종묘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1995년에야 서순라길 조성에 나섰다. 하지만 그 뒤에도 담장을 따라 선 주차장과 주변 공장과 사무실의 물건을 오르고내리기 위해 주정차된 차들로 인해 일반인이 일부러 찾아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서순라길이 변화가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종묘 돌담길 옆으로 사계절 뚜렷하고 시간 천천히 흐르는 곳”
낙후된 환경 탓에, 2010년대 이후 서울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모여든 공예가들의 작업장들이 서순라길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현재 주얼리 공장 12곳과 공예점 20여곳이 이 길에 모여 있다. ‘주얼리’로 유명한 인사동이나 종로3가 쪽이 ‘판매’가 주목적이라면, 서순라길은 공예가들의 작업을 위한 공간이 더 많다. 이 길에 있는 서울주얼리지원센터 남경주 산업팀장은 “아직은 많이 안알려진 곳이라 평일에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주말에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많다”며 “종묘 돌담길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공방들 전시품들도 수준이 높아 사진찍기도 좋은 곳으로 추천하고 있다. 건물 높이가 2층으로 제한돼 있고, 돌담에 작은 공장들과 한옥들이 어우러져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의 창덕궁에서 종로3가역까지를 잇는 축인 돈화문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익선동 한옥 거리와 서쪽에는 종묘와 서순라길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 돈화문로와 서순라길 재생사업을 마무리했다. ‘구글 지도’ 갈무리
“정비공사 마무리로 찾는 사람 많아 기대…한국 전통의 현주소 여기서 확인”
경기대 금속공학과 교수에서 퇴직한 뒤 2018년부터 이곳에서 ‘금채’라는 금속공예 갤러리를 운영하는 곽순화 전 교수는 ‘바뀐 서순라길’에 대한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말에 정비공사가 끝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골목마다 음식점, 카페 등이 새로 생겨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며 “서울에 다른 지역에서도 주얼리를 팔지만 여기는 작가들이 직접 만들어서 값은 좀 비싸지만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전통이 어떻게 현재 구현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이 있다면 이곳에 와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초 정비공사가 마무리된 서순라길. 조선시대에 순라군이 순찰하던 ‘신성한 곳’이었지만, 일본강점기 이후 판자촌으로 1995년부터 다시 길이 됐다. 하지만 낙후된 환경 탓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최근 정비가 이뤄져 찾는 이가 꽤 많아졌다. 김규현 기자
실제 최근 이 길을 따라 ‘인스타 감성’의 식당이나 카페 등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지난해 10월에 곽 전 교수 등 주도로 ‘서순라길 예술이 되다’라는 이름의 ‘공예 페어’가 진행됐다. 올 10월12일에는 옆길인 돈화문로의 고미술 갤러리들까지 가세해 ‘돈화문로 예술이 되다’는 예술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걱정…월세 지원 등 대책 마련 필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진 걸 원래 살던 사람들은 반기기만 할까. 2014년부터 이곳에서 ‘수쿠도’라는 은공예품 작업실을 운영하는 김성리 대표는 “익선동에 있다가 월세가 비싸져서 그때 있었던 작가들 상당수가 종로5가나 서순라길로 왔다”며 “여기 작가들 대부분이 월세로 지내는데, 최근 월세가 엄청 올라서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 월세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동인구는 많다지만, 여기 공예품은 인사동 쪽과 달리 보통 10만원은 넘는다. 지나가다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7년째 지내는 자기 일터에 대해 “서울에서 이렇게 자연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곳이 없는데, 일하다 보면 힐링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는 19만4331㎡ 넓이의 거대한 녹지공간이기도 하다.
서순라길에는 ‘원주민’인 작은 공장 12곳과 이곳 노동자들을 위한 오랜 점포들이 최근 들어선 ‘인스타 감성’ 식당·카페와 공존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소연공방’을 운영하는 김승희 국민대 금속공예과 명예교수도 “신문·방송 등 매스컴에서 서순라길을 자꾸 띄우는 데 (월세 인상으로 쫓겨나게 될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10여년 전에 처음 왔는데 그땐 땅값도 싸고 작업하기도 참 좋은 곳이라서 다른 작가들을 끌어들이려고 노력을 했는데, 벌써 월세가 꽤 올랐다. 시나 구에서 작가들에게 공간을 대여해줘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에는 종묘 주변을 순라꾼들이 순찰을 돌았다고 한다. 김양진 기자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종로3가 쪽으로 왕복 2차선으로 곧게 뻗은 ‘돈화문로’의 서쪽은 ‘익선동 한옥거리’고, 종묘 쪽(동쪽)이 서순라길이다. 왕들의 신줏단지가 모셔진 종묘 때문에 조선시대 순라길은 일반인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다. 화재나 도둑을 막기 위해 한밤중에도 순라군들이 돌았고, 그 덕에 순라길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던 이 길이 앞으로 변화해 갈지, 서울시와 종로구 그리고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김양진 김규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