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대전을 위한 영화를 찍고 싶어요. 지역에서도 세계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믿으니까요.”
배기원(사진) 감독은 대전에선 처음으로 영화제작사를 만든 이다. 그는 2011년 1분짜리 영화 <약속>으로 서울세계단편영화제에서 3위에 입상했고, 2016년 제작한 10분 분량의 영화 <인터뷰-사죄의 날>은 2017년 칸영화제 마켓 부문에 초대되기도 했다. 고향인 대전에 터를 잡은 독립영화 감독이다. 지난 28일 동구 소제동의 대흥영화사 사무실에서 배 감독을 만났다.
“대전이 잠깐 배경이 되는 영화는 있지만, 본격적으로 대전을 담은 영화는 없었어요. 그게 안타까워 2018년 중구 대흥동에 영화사를 차렸죠”
그는 2018년 장편영화 <나는 원래 대전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찍으려고 했었다>(대전로코)를 세상에 내놨다. 영화사 창립 작품이기도 한 ‘대전로코’는 영화의 배경이 거의 다 대전이다. 2019년에는 조선시대 여류시인 김호연재의 삶을 담은 단편영화 <화전놀이>를 찍기도 했다. 대전의 은진 송씨 가문으로 시집은 온 김호연재는 224수의 한시를 남기고 42살에 짧은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2019년 배 감독은 대전 대덕구의 문화적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오정동 한남로 88번길’을 배경으로 한 마을영화 <88번 길의 기적>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코로나19 탓에 계속 미루다가 지난 25일 대흥영화사에서 작은 시사회를 열었다.
<88번 길의 기적>에는 배 감독 자신이 마을 주민을 참여시켜 영화를 찍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 2명을 빼곤 23명 출연진 모두 대전 시민들이죠. 그 중엔 실제 오정동에 50년 넘게 산 분도 있고요. 아마추어들이다보니 리딩 연습만 한 달 이상 했어요. 촬영에 들어갔을 땐 생각보다 다들 연기를 잘해서 놀랐어요. 서툴러도 시민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뿌듯했죠.”
배 감독은 지난해 재개발 예정지인 소제동(옛 철도관사촌)으로 영화사를 옮겼다. 곧 사라질 낡은 집을 고쳐 ‘일년만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계약 기간이 1년이라 ‘일년만’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사라져 가는 소제동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찍을 계획이다. 이번 영화에도 시민들을 출연시키기 위해 최근 오디션을 진행했다.
“지역에는 영화를 찍을만한 인프라가 없어요. 배우, 촬영·조명 스태프도 다 서울에서 데려와야 하고, 그러다 보니 제작비가 올라가죠. 지역에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영화사를 차렸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많아요. 무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꿈을 갖고 버티고 있어요.”
글·사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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