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형무소 평화유족회 등이 청주 도장골 민간인 희생지 보존을 촉구하고 있다.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스무살 홍가륵은 1933년 중국 상하이로 향했다. 약산 김원봉 선생을 만난 그는 의열단에 가입했다. 의열단 2기로 정치·군사 등의 교육을 받은 그는 귀국해 비밀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경찰에 검거됐다.
해방 뒤 근로인민당 등 좌익 활동을 하다 청주형무소(청주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1950년 7월8~9일 청주 낭성면 도장골에서 100~200여명의 재소자와 함께 희생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이곳에 ‘청주 형무소 사건 희생지’라는 안내판을 세웠으며, 2010년 조사보고서에서 “대한민국 군경이 형무소 수감 정치범을 집단 학살했다”고 기록했다. 국가보훈처는 홍가륵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충북도, 청주시 등의 수해 방지 공사로 훼손된 청주형무소 사건 희생지
청주형무소 희생지인 도장골에 들어선 수해방지시설.
하지만 지금 홍 선생이 묻힌 ‘청주 형무소 사건 희생지’는 수해 방지 시설이 들어섰다. 수해 방지 시설은 충북도와 청주시 등이 설치했다. 수해 방지 시설 설치를 위해 청주시는 벌채 공사를 허가했고, 충북도 주도로 사방댐을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 현장인 민간인 희생지가 훼손됐다.
노인숙 청주형무소 평화유족회 총무는 “유족회에서 줄기차게 희생지 보존을 주장했지만 청주시 등이 공사를 강행했고, 지금은 학살지 대신 수해 방지 사방댐이 들어섰다. 이제라도 주변 유해발굴에 나서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와 유족의 한을 달래야 한다”고 말했다. 박완희 청주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충북도, 청주시는 도장골 민간인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하고, 유해발굴과 위령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더불어 청주시에 존재하는 모든 민간인 희생 지역에 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보전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청주형무소 평화유족회 등이 민간인 희생자 학살지 보존을 촉구하고 있다.
청주형무소 평화유족회 등이 민간인 희생자 학살지 보존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청주시가 사과문을 냈다. 청주시는 8일 “도정리는 청주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 및 보도연맹원 100~200여명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희생된 장소다. 수해 뒤 사방댐 공사와 벌채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희생지를 훼손했다. 유해발굴에 대비해 희생지를 적극적으로 보존했어야 함에도 희생지가 희생된 것에 대해 유족께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유해발굴, 위령 사업 등을 요구했다. 노인숙 청주형무소 평화유족회 총무는 “청주시 등은 유해발굴을 조속히 시행하고, 이후 위령비, 추모관, 공원 등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안병철 청주시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유해발굴과 위령 사업 등 유족들의 마음이 치유되도록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청주형무소 평화유족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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