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학사를 빛낸 오장환 선생을 인구 3만 보은에 가두지 말라.”
충북 보은군이 조례를 만들어 오장환(1918~1951) 문학상 응모 요건을 ‘보은군 거주자’로 한정하려 하자 지역 문화계가 전국 규모 권위 있는 문학상을 ‘동네 백일장’으로 격하하는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은군은 ‘보은군 오장환 문학상 운영 조례안’을 만들어 군청 누리집 등을 통해 입법 예고했다고 9일 밝혔다. 지난달 22일 조례안을 입법 예고한 군은 오는 11일까지 군 누리집 등을 통해 조례안 관련 찬반 의견 등을 수렴한 뒤 조례 제정에 나설 참이다.
보은군은 2008년 오장환 문학상(1000만원), 신인상(500만원)을 제정해 해마다 전국 응모 작품을 심사·시상해 오다 지원 근거 등을 마련하려고 조례 제정에 나섰다. 2018년엔 오장환 디카 신인문학상(300만원)을 추가 제정했다.
조례안은 상 제정 목적, 문학상 부문별 시상 내용, 운영·심사위원회 설치·운영, 비용 지원 근거 등을 담고 있다. 조례안 가운데 작품 응모 요건이 논란을 낳았다. 군은 작품 응모 요건을 ‘보은군내 거주자’(1년 이상), ‘출향 인사’로 한정했다.
군 누리집에는 조례안을 꼬집는 글이 줄을 잇는다. 유정환 시인은 ‘오장환 시인을 보은에 가두려는가’라는 글에서 “오장환 시인과 동향이라는 것을 자랑하곤 했던 사람으로서 참담하다. 오장환은 대한민국이 기억하고 기려야 할 시인인데 좁은 고을에 가둬 초라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종수 시인은 ‘보은문학상 조례를 거두십시오’라는 글에서 “오장환 문학상은 국내 최고의 문학 성과를 거둔 시인에게 주는 상이었다. 보은군민에 한정해 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은 시대 요구에 떨어지는 일이다. 조례 제정을 거둬달라”고 밝혔다.
군은 조례안을 만들면서 작품 응모 요건을 보은군 거주자 등으로 한정하고, 문학상을 일반·초등·중등·고등·대학부 등으로 세분화했다. 애초 문학상·신인상·디카상 등 연간 1800만원이던 상금 총액은 3795만원으로 크게 늘렸다. 이경구 보은군 문화예술팀 주무관은 “지역 주민이 오장환 문학상을 잘 모르는 데다 참여도 저조한 상황이었다. 지역 주민 참여를 늘리고, 오장환 문학상을 활성화하려고 상을 세분화하고, 상금도 늘리는 조례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에 유 시인은 “고을 안에서 문학상을 돌려가며 주고받는다면 상으로서 의미보다 돈 쓰는 일에 불과하다. 어떻게 예산은 늘리고 수상 범위는 좁히는 발상이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군 주도 조례 제정에 관한 비판도 나온다. 김성장 시인은 “오장환 문학상 운영위원이지만 조례안 내용 등에 관해 듣지 못했다. 권위 있는 문학상을 동네 백일장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지역 소외가 걱정된다면 기존 상은 그대로 두고, 지역을 위한 별도 방안을 마련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오 시인은 보은 회인에서 나고 자랐으며, 1930~40년대 낭만·시인부락·자오선 등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성벽>·<헌사>·<병든 서울> 등의 시집을 냈다. 서정주 시인은 오 시인의 작품을 두고 “당대 문단에 새로운 왕이 나타났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으며, 오 시인은 일제 말 친일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다. 보은은 2006년 오 시인 생가 옆에 오장환 문학관을 개관하는 등 오 시인을 지역 대표 문화 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김덕근 충북작가회의 회장(시인)은 “이웃 충주의 권태응 문학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은 대부분 전국의 내로라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보은을 포함해 전국을 아우르는 공모가 오 시인과 보은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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