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유해발굴단 연구원들이 골령골 현장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발굴단 제공
정강이뼈, 엉덩뼈, 머리뼈, 두개골, 치아….
71년 세월에 빛바랜 수없이 많은 뼛조각들이 건물 바닥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 대표적인 민간인 집단학살지인 대전 산내 골령골(낭월동 13번지 일원)에서 나온 유해들이었다.
지난 10일 찾은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에서 만난 연구원들은 6월1일부터 지난 6일까지 두달 남짓 새로 발굴된 뼈들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 중이었다. 김태인 연구원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유해가 발굴돼 조사시간이 빠듯하다. 하지만 잘 모셔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유해분류 작업이 진행중인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니 발굴을 위해 길게 파놓은 구덩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덩이 안에는 발굴을 기다리고 있는 다리뼈가 보였다. 그 옆에는 부서진 엉덩뼈도 있었다. 김기현 연구원은 “유해들이 뒤엉켜 있기 때문에 다리뼈와 엉덩뼈가 같은 사람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며 “문화재 발굴 때보다 더 경건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덩이 안에서는 유해뿐 아니라 탄피·탄두, 신발 밑창 등도 발견됐다. 가장 많이 나온 유품은 “당시 대전형무소의 죄수복 단추로 보이는”(김기현 연구원) 하얀색 단추였다.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하는 채준 연구원이 발견된 유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골령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7월17일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재소자와 대전·충남지역에서 좌익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집단학살돼 묻힌 곳이다. 1992년 12월 말 해제된 미국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 1차 학살 ( 6월28 ∼30일 ) 1400여명 , 2차 학살 (7월3 ∼5일 ) 1800여명 , 3차 학살 (7월6 ∼17일) 3800여명 등 무려 7천여명이 군·경에 의해 무차별 집단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묻힌 30m에서 180m에 이르는 구덩이 8곳을 연결하면 길이가 무려 1㎞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세월 언급조차 금기시돼오던 골령골 집단학살은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주도 첫 발굴에서 유해 34구가 발굴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유족회·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희생 발굴공동조사단’도 2015년 12구의 유골을 수습했다.
행정안전부와 대전 동구청 주관 아래 진행된 지난해 3차 발굴에서는 234구의 유해가 발견됐다. 올해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를 목표로 3개 팀으로 나뉘어 1320㎡에서 유해발굴이 이뤄지고 있는데, 450∼500구가량이 발굴된 상태다. 올해 발굴 현장에는 200명 가까운 자원봉사자들도 찾아 현장에서 흙을 나르는 등 작업을 도왔다.
대전산내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을 총괄하는 박선주 책임연구원(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이 지난 10일 발굴 현장 옆에 있는 가건물에서 발굴된 유골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유해발굴 작업을 총괄하는 박선주 책임연구원(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은 “감식을 하다 보면 다른 뼈들보다 작은 뼈가 보이는데, 그 주인이 미성년자인지 여성인지 왜소한 남성인지 해부학적인 지식과 디엔에이(DNA)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성년자 유해의 경우 어금니가 덜 자란 치아도 발견된다”며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해 희생자 중 미성년자와 여성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난해 유해발굴과 감식을 통해 그 이야기가 사실이란 것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도 미성년자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뼈가 발굴됐다. 골령골 유해발굴은 1950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진실을 밝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미경 대전산내사건희생자 유족회장은 “유해가 발굴되는 현장에서 가슴이 찢어졌다. 너무 비참해서 유해를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유해가 우리 아버지라고 확인할 순 없지만, 한분 한분 나오실 때마다 아버지라고 생각돼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굴된 유해들은 2024년 골령골에 들어설 평화위령공원 ‘진실과 화해의 숲’에 안장될 예정이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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