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근 대전·충청 5·18 민주유공자회 부회장이 1일 청주제일교회에서 열린 최종철 열사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숨진 최종철 열사의 추모비가 청주제일교회 민주정원에 세워졌다.
민주열사 최종철 동시 40주년 추모위원회는 1일 청주제일교회 정문 민주정원에서 최 열사 추모비를 제막하고 추모 문화제를 했다. 행사에는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대전충청 5·18민주유공자회, 5·18기념재단 등이 참여했다.
추모비의 ‘해방에 가슴사무쳐 불타오른 투혼’ 문구는 통일운동가 흰돌 강희남 목사가 썼다. 추모비는 애초 청주 양촌리 선산에 있었지만 이날 청주제일교회 정문 민주정원으로 옮겼다. 정지성 추모위 공동대표는 “시민과 함께 최 열사의 뜻을 기리려고 이전했다. 최 열사는 청년시절 이 교회에 다니면서 학생회·청년회 활동을 했으며, ‘밀알회’라는 모임을 주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추모위는 추모비 제막, 추모제에 이어 추모 문집 발간도 추진한다.
최 열사는 1977년 부산대에 입학하고, 1999년 10월 부마민주화항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휴교령에 따라 고향 청주로 왔다가 1980년 5월 민주항쟁 때 충북대·청주대 등과 민주화 운동을 했다. 하지만 5월18일 포고령 위반으로 검거돼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년 뒤 석방됐지만 3개월만에 숨졌다. 최 열사는 청주시 용정동 청주제일교회 공원 묘역에 안장됐다가 1990년 3월21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로 이장됐다.
충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등이 1일 진행한 최종철 열사 추모비 제막과 추모제.
최 열사는 1999년 5월 5·18민주 유공자로 추서됐으며, 모교인 부산대는 지난해 4월 명예 졸업장을 헌정했다. 고교 동문이었던 정지성 추모위 공동대표는 “최 열사는 당시 신군부에 끌려가 모진 구타와 고문 등을 당했으며, 1년 복역 뒤 특사로 나왔다가 3개월 만에 숨졌다. 전두환 정권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진 민주열사 최종철 동지 40주년 추모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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