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전 서구 탄방동 탄방네거리 인근 가로수가 밑동만 남긴 채 잘려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수십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가로수 18그루가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한꺼번에 베어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서구는 지난 2월 탄방동 탄방네거리 인근에 심겨 있던 버즘나무 18그루를 밑동만 남긴 채 잘랐다. 잘린 가로수 앞의 차도 약 120m 구간을 2차로에서 3차로로 늘리는 과정에서 가로수가 방해물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잘린 버즘나무는 1980년대 초 심어져 40년 가까이 해당 장소에서 자라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을 진행하는 서구 건설과에서 “가로수를 잘라야 한다”는 요청을 공원녹지과 쪽에 했고,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대전시와 협의해 가로수를 베어내는 것을 허락했다. 협의 과정에서 대전시는 ‘쓸 수 있는 나무는 이식하고(옮겨심고), 나무 상태가 좋지 않으면 대체식재(바꿔심기)를 검토하라’고 서구 쪽에 공문을 보냈다.
서구 공원녹지과는 나무를 옮겨심는 대신 ‘나무 상태’를 잘라내야 하는 근거로 들었다. ‘대전시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 조례’는 “도로공사 또는 정비를 하려는 경우 가로수를 조성·유지해야 한다”고 정한다. 다만, 나무껍질과 나무모양이 불량한 수목이나 나무줄기가 부러졌거나 썩어서 부러질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는 나무를 자르고 바꿔심기할 수 있다. 서구 담당자는 ‘나무 모양이 좋지 않고 줄기 훼손도 심해 옮겨 심어도 살기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나무 생육 상태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나 협의체 등을 통한 논의는 없었다.
지난해 8월 대전 서구 탄방동 탄방네거리 인근 도로의 모습. 이곳에 심겨 있는 버즘나무 18그루는 7개월 뒤 도로확장 공사를 이유로 모두 잘려나갔다. 네이버 거리뷰 갈무리
도로 공사가 끝난 뒤에도 이 구간에는 가로수가 다시 심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 따라 보도 폭은 최소 2m 이상이어야 하는데, 차도가 늘어나는 대신 보도 폭이 줄어들며 가로수를 심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서구 관계자는 “‘대전시 도시림 등의 조성·관리 심의위원회 운영방침’에 따라 도로 건설 사업 구간이 500m 이하이면 위원회 심의 없이 시 협의만으로 가로수를 벨 수 있다”며 “해당 구간에 심지 못한 가로수는 가로수를 심을 수 있는 다른 곳에 대체식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은 “공원녹지과 공무원조차 실제 그 나무가 공익적인 환경재로서 시민에게 선사한 가치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관행적인 사례”라며 “기후위기 시대 달라지는 시민의 눈높이를 행정이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최 위원은 “그 나무가 여러 이유로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이식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 나무의 상태를 판단할 때 객관적인 조사도 하지 않고 나무를 잘라버렸다”며 “나무를 옮기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도 나무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주민에게 미리 알려 공론화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