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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만에 잡히다…대전 한복판 은행 권총강도 미스터리의 끝

등록 2022-08-28 17:22수정 2022-08-29 09:41

대전경찰청, 살인강도 혐의 40~50대 2명 구속
총쏜 뒤 현금가방 탈취…인근 건물 차버리고 도주
과학수사 발전 덕분 범인 유류품 유전자 검출
총입수 경위·잇단 현금수송차 범행 관련성 등 조사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A씨가 2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대전지법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A씨가 27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대전지법 밖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은행 대전 둔산지점 현금수송차량 권총 살인강도사건 용의자 2명이 범행 발생 21년 만인 지난 27일 밤 대전경찰청에 구속됐다.

40대, 50대인 용의자들은 지난 2001년 12월21일 오전 10시께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수송차량에서 돈을 내리던 김아무개(당시 43살·국민은행 용전동지점 현금출납과장)씨를 권총으로 쏴 숨지게 하고 3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살인 강도 등)를 받고 있다.

2018년 1월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이 범행에 사용된 차량에서 수거한 유류품 가운데 몇 가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재감정을 의뢰해 범인의 유전자를 확보했다. 그리고 당시 탐문수사 기록 등을 참고해 수사 대상에 올랐던 이들과 주변인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유전자 정보 확인에 나선 끝에 만 4년여 만인 이달 중순 용의자 ㄱ씨를 특정해냈다. ㄱ씨는 한때 유행한 컴퓨터오락실과 관련된 인물로 알려졌다.

전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 관계자는 “대조군이 없는 유전자만 갖고 범인을 특정하기는 ‘금강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였다”며 “이 사건이 해결된 것은 ‘살인사건은 공소시효를 무기한 연장한 형사소송법 개정(태환이법)’과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은 미제사건수사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 사건은 완전 범죄가 될 뻔한 계획 범행이었다는 점에서 밝혀야 할 사실 관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두 달 전 발생한 경찰관 권총 강탈사건, 범죄 수법과 도주 방식, 이 사건 이후 대전에서 잇따랐으나 모두 미제사건으로 남은 은행 현금수송차량 강탈사건과의 연관성, 또 다른 공범의 존재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대전 은행 강도사건
대전 은행 강도사건

경찰관이 강탈당한 권총으로 범행?

국민은행 둔산지점 권총 강도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두달여 전인 2001년 10월16일 밤 0시10분, 대전 동부경찰서 가양2동파출소 소속 ㄴ(33)경사는 순찰을 하다 대덕구 송촌동 ㄷ주유소 앞길에서 괴한이 몰던 차량에 치여 의식을 잃었다. 괴한은 ㄴ경사의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빼앗아 달아났다. 목격자들은 “대전31 더5××7호 흰색 쏘나타가 경찰을 친 뒤 조수석에서 한 사람이 내려 주변을 살핀 뒤 시내 쪽으로 달아났다”고 진술했다.

이 차량은 10월14일 밤 9시40분께 월평동 ㅎ마트 앞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괴한들은 범행 현장에서 700m 떨어진 경부고속도로 대전나들목 앞 가로공원에 이 차량을 버리고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괴한들이 이곳에 도주용 차량을 대기시켜 놓고 범행한 뒤 차량을 갈아타고 달아난 것으로 보고 수사했으나 검거에 실패했다. 그러나 2인1조로 하는 순찰을 왜 ㄴ경사 혼자서 했는지, 권총을 탈취당한 곳이 이 파출소의 순찰 구역이 아닌 데다 괴한들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 같은 정황이 의혹으로 남았다. ㄴ경사는 머리를 다쳐 사고 당시를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국민은행 둔산지점 사건 수사본부는 범인이 사용한 실탄이 경찰에 지급된 것과 같은 종류이고 생산도 같은 시기에 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여러 정황상 ㄴ경사가 탈취당한 권총이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권총 탈취범과 은행 살인강도는 동일범?

당시 사건 수사본부는 권총 탈취범과 은행 살인강도 용의자들을 동일범으로 보고 수사했다. 범행에 사용한 차량을 훔치고, 범행하고 도주하는 과정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범인들은 권총을 강탈할 당시 이용한 대전31 더5××7호 흰색 쏘나타, 살인강도 사건에 이용한 경기×× 러5432호 검은색 그랜저 엑스지 차량 모두 시동이 걸린 채 잠시 정차한 틈에 훔쳤고,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범행했으며, 범행 직후 인근에 버리고 다른 차량으로 도주했다. 그랜저는 12월1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영풍동에서 도난당했다.

특히 경기×× 러5432호 검은색 그랜저 엑스지 차량의 유기 수법은 특이했다. 범인들은 현금을 강탈한 뒤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500m 떨어진 건물의 지하주차장에 범행 차량을 버렸다. 또 증거를 은닉하기 위해 차량에 자동 발화장치를 설치하고 트렁크에 인화성 물질도 넣어 두었다. 그러나 이 차량은 문이 잠겨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바람에 자동 발화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에 범인을 특정한 유전자는 이 차량에서 발견된 범인의 유류품에서 나왔다.

당시 수사관계자는 “그랜저를 감식했는데 유리창, 운전대 등에서 지문 등을 찾지 못했다. 도주 전에 휘발유 등으로 닦아 흔적을 지운 것 같았다”며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한 덕분에 이전에는 찾지 못했던 증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접촉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라는 수사 격언이 떠오른다”고 했다.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2001년 12월 발생한 국민은행 둔산지점 현금수송차량 살인강도사건 용의자 2명을 27일 구속했다. 송인걸 기자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2001년 12월 발생한 국민은행 둔산지점 현금수송차량 살인강도사건 용의자 2명을 27일 구속했다. 송인걸 기자

국민은행 사건과 현금수송차량 도난 사건 관련성은?
대전에서 현금수송차량이 범행 대상이 된 것은 국민은행 둔산지점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5월 수협 용전동지점 현금 가방(피해액 1억3천만원)을 오토바이를 탄 2인조가 날치기한 사건을 비롯해 2003년 1월 은행동 현금수송차량 도난(피해액 4억7천만원), 같은 해 9월 유천동 현금수송차량 도난(7억500만원)이 발생했다. 이 사건들은 모두 공소시효를 넘겨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은행동과 유천동 사건은 보안요원들이 현금지급기에 현금을 채우러 간 사이 차를 훔치는 수법이었다. 도난당한 현금 운송 차들은 범행 현장에서 5~10㎞ 떨어진 천변 둑과 유흥가 골목에서 돈 가방만 사라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국민은행 둔산지점 사건과 현금수송차량 범행은 모두 연관성이 있고,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고 여겼다. 돈 가방 날치기 수법에서 총기로 위협해 빼앗았다가 수송 차량을 통째로 훔치는 수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은행 사건은 치밀한 계획 범행이라는 점에서 용의자가 최소 4인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이에 따라 범행 실행조 2명, 운전 1명, 범죄 기획 1명 이상이 공범이라고 가정하고 수사했다. 한 퇴직 수사관은 “2003년 현금 차량 도난 사건은 용의자들이 2001년 강탈한 돈이 떨어지자 끼리끼리 모여 범행했을 것”이라며 “많은 현금을 훔치되 살인은 피하려고 현금수송 차량을 훔치는 방법을 찾은 것으로 봤다. 국민은행 범행을 보면 용의자들도 당황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민은행 사건 당시 용의자들은 현금수송차량에 돈 가방에 더 실려 있었는데도 김 과장이 총을 맞고 쓰러지자 그대로 도주했다. 또 현금수송차량 운전자가 차량으로 용의자들이 탄 그랜저를 충돌했으나 총을 쏘는 등 추가 위협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하주차장에서 빠져 나가면서 통로 벽을 이리저리 충돌하며 도주했다.

이성선 대전경찰청 강력계장은 “용의자들과 경찰·현금수송업체와 연관성, 범행에 사용한 권총의 행방, 공범이 더 있는지 여부, 여죄 등을 수사하고 있다. 아직 수사 상황을 공개할 단계는 아니며 9월1일께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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