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 성매매집결지 아카이빙전 ‘도시의 섬: 무형의 경계를 깨고’에 전시된 사진 기록물들. 최예린 기자
“외로워요. 누구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먹는 게 소원이에요.”
열일곱에 집을 나와 30년 넘게 대전역 앞 중동에서 성매매한 ㄱ씨는 구술기록 작가 권순지씨를 만나 “사는 게 항상 우울했다”고 고백했다. 매일 울고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던 자신을 보듬어주지도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않는 부모 곁을 떠나 어린 나이 중동의 여인숙 작은방에서 일을 시작했다. 쉬지도 않고 “개떡 같은 손님”을 다 받아가며 “악착같이” 일한 세월 끝에 남은 건 병든 몸과 우울한 마음뿐이었다. 권 작가는 “사람 구실 못할까 봐 걱정”이라며 자조하던 ㄱ씨 바라보며 “성매매 여성을 향한 사회적 낙인이 결국 여성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고 원망하게 만들어버린 황폐한 현실”을 목도했다고 했다.
대전역 성매매집결지 아카이빙전 ‘도시의 섬: 무형의 경계를 깨고’에 전시된 박채은 작가의 만화 ‘고양이 언니’. 최예린 기자
ㄱ씨의 이야기는 대전역 성매매집결지 구술기록 ‘아무도 오지 않고 갇혀 있는 섬 같아’에 담겨 있다. 사단법인 여성인권티움은 ㄱ씨와 같은 성매매 당사자뿐 아니라 인근 주민·상인, 전문가·빈민운동가·공무원 등 13명의 이야기를 기록했고, 대전역 성매매집결지 아카이빙전 ‘도시의 섬: 무형의 경계를 깨고’에서 공개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대전역 성매매집결지를 주제로 지난 2년간 수집한 구술·사진 기록과 지역 청년 예술가들의 시각으로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20일부터 오는 27일까지 대전 동구 문화공감 철31(원동 31-4)에서 열린다.
대전역 성매매집결지 아카이빙전 ‘도시의 섬: 무형의 경계를 깨고’에 전시된 김재연 작가의 그림들. 최예린 기자
전한빛 여성인권티움 활동가는 “조선총독부가 현재 중앙동인 춘일정 뒷골목을 유곽지역으로 지정하면서 형성된 대전역 성매매집결지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폭력과 착취의 공간으로서 존재해오고 있으며, 무관심과 사회적 배제 속에서 방치돼 성매매 호객행위와 성 구매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도심 속 섬으로 남아 있다”며 “전시회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도시의 섬’의 경계를 허물고 이곳을 평등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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