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설계자이자 파수꾼인 예관 신규식(1880~1922) 선생의 호적(가족관계증명)이 회복됐다.
‘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예관 기념사업 추진위)는 20일 “지역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예관 선생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국가보훈처, 법원 등을 통해 예관 선생의 호적 회복을 추진했는데 최근 호적 회복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가 오는 22일 충북 청주 청남대 임시정부 기념관 광장에서 열리는 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에서 선생의 유족에게 가족관계증명 전수식을 할 계획이다.
예관 선생은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1922년 9월25일 중국 상하이에서 순국해 호적이 없었다. 이에 예관 기념사업 추진위는 지난 3월부터 선생의 호적 회복에 나섰다. 먼저 선생이 태어난 청주시 가덕면에서 무적 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인증을 받았다. 이어 서울가정법원을 거쳐 최근 가족관계부 생성 통보를 받았다. 박걸순 예관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은 “1993년 유해 봉환과 국립현충원 안장에 이어 선생의 호적 회복은 유족과 후학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많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예관 기념사업 추진위는 순국 100돌 추모식과 함께 선생 관련 문서·편지·사진 등을 기획 전시한다.
선생이 순국하기 4개월 전 사위 민필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도 처음 공개됐다. 선생은 “몸조리를 잘해 속히 일어나길 도모하니 염려하지 말라. 동지들과 애정으로 힘을 합하는 데 힘써라. 가족이 평안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일제가 예관 신규식 선생 등 임시정부 간부 등을 사찰한 문건. ‘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일제가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간부들을 사찰한 문서도 공개됐다. 1921년 5월10일 ‘고경 제1만3028호’라고 쓰인 문건을 보면, 법무총장인 선생을 ‘친미 친중 온건파, 군사행동 주장자’로 분류했으며, 신익희·윤보선·박찬익 선생 등을 일파로 봤다. 이 문서에선 이시영(재무총장) 선생을 ‘친미 온화파’, 이동휘(전 국무총리) 선생을 ‘친러시아 군사행동 주장자’로 분류했다.
예관 신규식 선생이 순국 4개월 전 사위 민필호 선생에게 보낸 편지. ‘예관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공
예관 선생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도 23일 충북 미래여성플라자에서 열린다. ‘동아시아 민족 운동사에서 신규식의 위상’(김희곤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장), ‘중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석을 다진 예관 신규식’(임지선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연구관), ‘예관 후기시 연구를 위한 선결 과제’(진옥경 예관 신규식 전집 편찬위원), ‘신규식과 파리 강화회의’(배경한 신라대 명예교수) 등의 학술 발표와 토론회가 이어진다. 특히 박걸순 예관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충북대 사학과 교수)은 예관 신규식 선생이 1908년 7월 고령 신씨 문중 영천학계와 고향 마을(청주 가덕면)에 설립한 교육기관 ‘문동학교’ 관련 학술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애초 단재 신채호 선생과 예관 선생이 1901년 ‘문동학교’, 1903년 ‘덕남사숙’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에서 바로 잡았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사료 등 불분명한 근거로 덕남사숙과 문동학교 관련 사실이 잘못 서술됐다. 문서 고증, 선생의 행적 탐구 등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았다. 선생 관련 근대교육사도 새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예관 선생은 단재 신채호, 경부 신백우 선생과 함께 청주 동쪽에서 태어난 세 천재 ‘산동삼재’로 불렸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에 분개해 의병을 일으키려다 실패한 뒤 음독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독이 퍼져 한쪽 눈의 신경이 마비됐고, 늘 찡그린 표정이어서 ‘흘겨본다’는 뜻을 지닌 예관을 호로 정했다. 1911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국무총장 대리겸 외무총장 등을 지내면서 임시정부 파수꾼 구실을 했다. 선생은 상하이에서 쑨원, 천두슈, 천치메이, 쑹자오런 등 중국 정치인과 교우하면서, 비밀 결사 ‘동제사’, ‘신한혁명당’ 등을 조직하고, <진단>, <신한청년> 등 잡지를 내는 등 독립운동을 다각화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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