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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 울타리 곱은탱이…” 이문구 ‘관촌수필’ 고향, 문학동네로

등록 2022-12-16 16:27수정 2022-12-16 16:42

충남 보령시 대천2동, 토박이말 문학 빚어낸 터전
국토부 공모해 113억 투자 관촌마을 재창조 사업
생전의 소설가 이문구.
생전의 소설가 이문구.

“읍내로 나가는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곱은탱이를 돌 어름, 잠시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번 옛집을 돌아다 보았다. (…) 나는 이어 칠성바위 앞으로 눈을 보냈는데 정작 기대했던 그 할아버지의 환상은 얼핏 하지도 않았다.”

이문구(1941~2003년) 연작소설집 <관촌수필>의 첫 단편인 ‘일락서산’의 일부다. 이문구가 고향을 떠나는 길에 돌아본 옛집과 주변 풍경이 지금도 눈 앞에 펼쳐질 것 같다. 그의 고향인 ‘관촌’은 충남 보령시 대천2동의 옛 이름이다. 관촌은 대천면 대천리의 신평, 신시, 구시, 관촌 등 4개 구 가운데 하나였고 갈머리로도 불렸다. 이 관촌마을이 문학동네로 거듭난다.

보령시는 국토교통부가 공모한 ‘우리동네살리기형 도시재생사업’에 대천2동이 선정돼 새해부터 2026년까지 ‘문학과 함께 살아나는, 관촌마을 재창조 사업’을 추진한다고 16일 밝혔다. 예산은 113억원이다. 관촌마을 재창조 사업은 △문학을 테마로 한 동네 정비 △소나무숲·커뮤니티센터 중심의 문화 프로젝트 △주민 역량강화 사업 등으로 꾸려진다.

‘이문구’와 ‘관촌’이라는 콘텐츠 유산에도 불구하고 대천2동을 재창조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관촌수필>에 등장하는 풍경 가운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용준 보령시 사업 담당은 “탱자나무 울타리 곱은탱이도, 마을 앞 한내와 철길도, 소나무숲 왕소나무도 남아있지 않다. 북두칠성처럼 7개 바위가 자리 잡았던 칠성바위와 이문구의 집은 터만 남았다”고 전했다.

관촌마을 재창조 사업 구상도. 보령시 제공

문학인들은 남아 있는 마을 뒷산인 부엉재, 어린 시절 소녀 옹점이와 뛰놀던 솔숲, 마을 우물만으로도 이문구의 삶과 문학을 충분히 곱씹어 음미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문구의 작품에 등장한 솔숲의 의미와 토박이말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알리는 것이 관촌 재창조 사업의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인 이미숙(대전젊은시 동인)씨는 “이문구 선생은 이미 작품에서 변해버린 고향을 소개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보존 안 된 과거를 만들기 보다 선생을 배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권덕하씨는 “솔밭은 선생의 유골을 모신 곳으로 알려졌지만, 선생의 작품에서 그곳은 할아버지의 푸르른 선비 정신, 시대를 뛰어넘은 가족 사랑이었고 한국인의 가치와 심성, 도덕적 품성의 상징이었다. 또 선생은 한내(대천)의 토박이말에 깊은 애정을 갖고 말과 삶을 하나로 녹여내 실생활과 작품에서 입말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보여주셨다”며 “관촌 재생사업에 솔밭과 토막이말의 문학사적 의미를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촌수필>은 이문구가 1972년 발표한 ‘일락서산’을 시작으로 1977년 ‘월곡후야’까지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뤄졌다. 고향인 관촌과 사람들이 해방과 한국전쟁, 근대화를 겪으며 변해가는 농촌 공동체를 한내 사투리의 1인칭 독백체로 담담하게 그렸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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