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충청북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료비 후불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돈 없어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충청북도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의료비 후불제’를 시행한다고 9일 밝혔다. 의료비 후불제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미루는 취약 계층에게 의료비를 빌려줘 제때 치료받게 하려는 제도다. 충북 지역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보훈 대상자, 장애인 중 65살 이상 노인 11만2358명이 대상이다. 치과 임플란트, 무릎·고관절 인공관절, 척추질환, 심·뇌혈관 6가지 질환 수술(시술) 때 의료비를 빌릴 수 있다.
돈은 농협이 빌려준다. 총 대출 규모는 25억원이며 1인당 최대 한도는 300만원이다. 최대 3년 동안 매월 분할 상환할 수 있다. 이자는 물론 중도상환 수수료도 없다. 이자(연 5.78%·변동금리)는 도가 부담하며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원금 상환 책임도 도가 진다. 이를 위해 충청북도는 올해 예산에 9억2천만원을 반영해 뒀다.
김용길 충청북도 의료비후불제팀장은 “채무자가 6개월 이상 빚을 연체하면 도가 채권을 인수해 돈을 대신 갚는다”며 “충청북도는 채무자의 빚 상환 기한을 최대 20년으로 늘려 원금을 회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무자의 상환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는 얘기다.
의료비 후불제를 이용하려는 충북 도민은 도가 지정한 병원을 통해 대출을 신청하면 된다. 행정정보를 활용한 도의 자격 심사를 통과하면 해당 병원에서 산정한 의료비를 농협이 대출해 주는 구조다.
첫 수혜자는 청주시 서원구에 사는 조아무개(69)씨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그는 지난 6일 치과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충북도에 의료비 후불제를 신청해 대상자로 이날 선정됐다. 시술은 오는 12일 예정돼 있다.
의료비 후불제 지정 병원은 충북대병원·청주의료원 등 종합병원 12곳과 병·의원 68곳 등 모두 80곳이다. 지역별로는 청주 30곳, 충주 8곳, 제천 10곳, 음성 9곳, 보은 7곳, 단양·영동 각 4곳, 진천 3곳, 증평·괴산 각 2곳, 옥천 1곳이다.
도는 앞으로 이 사업의 규모를 크게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는 농협의 손을 빌렸지만 이르면 내년부터 자치단체 출연금과 기부금을 합쳐 100억원 규모의 기금(가칭 착한은행)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취약 계층에게 의료비를 할인해 주는 ‘착한 병원’ 지정 사업도 펼쳐나갈 참이다.
김영환 충북지사는 “의료비 후불제는 선결제 후진료를 선진료 후결제로 바꾼 역발상 시도”라고 밝혔다. 이 제도는 치과의사 출신인 김 지사의 선거 공약이다.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다. 박홍서 충북의사회장은 “의료비 후불제는 취약 계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무료·무상 진료가 아니기 때문에 후불 의료비의 징수 체계를 튼실히 하고 투명한 기금 관리와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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