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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기억전쟁에 휴전은 없다”…21년 발굴·기록 대장정

등록 2023-04-02 18:21수정 2023-04-02 19:18

[짬]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대표
한국전쟁 전후 국가폭력 희생자 찾아내 역사 기록

“제 전쟁은 여기서 멈추지만 수십만, 수백만 국가 폭력 희생자들의 억장 무너지는 기억전쟁에는 휴전이 없지요.”

한국전쟁 앞뒤로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이야기를 발굴·기록해 온 박만순(57·사진)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오는 30일 <박만순의 기억전쟁 3>(도서출판 고두미)을 낸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관련 다섯 번째 저서이자, 21년 동안 이어온 전쟁의 마침표다.

그는 2002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이후 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이야기를 담은 <기억전쟁>,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을 다룬 <골령골의 기억전쟁>을 냈다. 2021년과 지난해 <박만순의 기억전쟁>(1, 2편)을 잇따라 냈다.

이번 책에는 충북과 전국의 이야기를 고루 담았다. 전남 함평·장성·완도, 전북 임실·완주, 경남 거창, 경북 영덕, 충남 태안, 충북 청주·충주·영동 등에서 발굴한 이야기 47편을 실었다. 그는 “대부분 ‘빨갱이 낙인’에다 연좌제 등이 두려워 가슴 속 응어리를 꺼내지 않다가 ‘청방’(청년방위대), ‘보련’(보도연맹), ‘한청’(대한청년단) 등 당시 피해자만 아는 단어 몇 개만 툭 던지면 실타래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20년 넘게 하다 보니 얘기 끌어내는 재주도 좀 생겼다”고 했다.

첫 장 전북 임실 폐금광 학살 사건인 ‘오소리 작전’부터 눈물겹다. 1951년 3월14일 군경은 빨치산·부역자 등 300여명이 전북 임실의 한 폐금광에 은신했다는 첩보에 따라 굴 앞에 박래업씨 등 주민을 모으고, 생솔가지·고춧대 등을 쌓았다. 경찰에 등을 밀린 박씨는 “정기 아부지 자수하면 살려준대요. 얼릉 나오소”라고 소리쳤다. 남편도, 누구도 답이 없다. “불피워!” 군경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시커먼 연기가 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박 대표는 “오소리 작전으로 불린 야만행위인데 이런 국가 폭력이 수없이 자행됐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 300~400명이 질식 등으로 숨졌고, 생포된 50~70명도 10여일 뒤 총살됐다”고 기록했다.

민간인 학살 기록 21년 대장정
최근 ‘기억전쟁’ 3부작 마무리

임실 ‘오소리작전’에 400명 질식사
빨갱이 몰린 독립운동가 채충식
거창 청연마을 학살사건 등 담아

“나는 옮겼을 뿐, 책 만든 8, 9할은
유족·피해자의 처절한 넋두리”

신간회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채충식 선생의 이야기는 어이없다. 건국동맹에 참여했던 선생은 1948년 5월10일 백범 김구 선생과 38선을 넘어 ‘전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빨갱이 집안’으로 몰렸고 끝내 독립유공자 서훈도 받지 못했다. 경남 거창 청연마을 학살 이야기는 처절하다. 박 대표는 “3일 동안 군인이 주민 700여명을 몰살했는데 숨진 이들의 품이나 치마에 숨어 있던 아이들만 총탄을 피해 살아남았다. 사람은 죽이고 집·식량은 태워 버리는 견벽청야 작전이었다”고 기록했다.

박 대표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민간인 학살 관련 글 240건도 보도했다. 특히 전남 장흥 경찰가족 학살, 경북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 이야기 등은 100만명 이상이 조회하기도 했다. 그는 좌익 활동을 한 형(박상희) 탓에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보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돌변한 이야기, 월북한 벽초 홍명희 선생 탓에 학살된 충북 괴산 제월리 주민, 제2의 노근리 사건으로 불리는 충북 영동 매천리 학살 등을 찾았다. 더불어 학살 위기의 시민을 구한 영동 용화지서장 이섭진·진천 이월지서장 최민호 등 ‘한국판 쉰들러’도 발굴했다. 그는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교수·전문가 등이 쓴 논문 등은 딱딱해 일반인이 읽기도, 이해하기도 힘들어 생생한 사례를 살려 소설처럼 쉽게 쓰려 했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공유해줬다”며 “저는 듣고, 기록하고, 옮겼을 뿐 책을 만든 8~9할은 유족과 피해자들의 생생하고도 처절한 넋두리였다”고 했다.

민간인 학살 21년 기록 대장정을 마무리한 그는 취재·글쓰기를 놓지 않을 참이다. 대신 전국을 쏘다녔던 무대를 충북 영동으로 좁히려 한다. 그는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공주대 참여문화연구소와 영동지역 자연마을 401곳을 다니며 민간인 학살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했지만 활동은 기대에 못 미친다. 영동은 미군 총격으로 양민 수백명이 희생된 노근리 사건을 비롯해 해방·한국전쟁 전후 수많은 민간인 관련 사건이 일어난 ‘대한민국 아픈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영동을 통해 상처투성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투영하는 작업을 해 보려 한다”고 했다.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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