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대전 대동 하늘마을 주민들이 벽화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지난달 22일 배골산 아래 대동 하늘마을 가는 길, 조금씩 숨이 가빠졌다. 언덕을 따라 늘어선 집들 벽엔 각양각색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벽화를 감상하며 오르다 보니, 멀리서 허리를 숙이고 벽에 붓질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을 주민과 충남대 학생들이 함께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벽에는 초록색 구릉 아래로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분홍색 지붕을 얹은 집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이었다. 주민들의 초안을 학생들이 다듬어 밑그림으로 옮겼고, 거기에 다시 주민들이 색을 채워 넣었다.
벽화 작업에 몰두하던 주민 안선숙(62)씨에게 그림 주제가 뭐냐고 물었다. “몰러유. 그냥 이쁜 마을이 됐으면 하는 우리 마음이쥬.” 안씨가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다.
■ 피난민 넘치던 배골산 아래 판자촌
동네 통장을 맡고 있는 안선숙씨는 대전 대동에서 태어난 마을 토박이다. 6남매 중 넷째인 안씨는 스물일곱에 결혼하고도 내내 대동에서 살았다. 안씨의 어린 시절 대동은 “사람 바글바글한” 판자촌이었다. 배골산 경사면을 따라 슬레이트를 얹은 무허가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은 자전거 한대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연탄은 머리나 지게에 이고 지고 옮겨야 했고, 비만 오면 길이 질퍽거려 장화 없인 다니질 못했다. 공동화장실이 있었고, 겁 없는 동네 애들은 화장실 앞 묘지에서 뛰어놀았다.
1978년 대전 동구 대동 판자촌 전경. 대전시 사진 아카이브
마을 주민 대부분은 전쟁 때 내려온 피난민 출신이었다. 일용직 노동자가 많았고 술도 많이 마셨다. 좁은 동네에서 싸움도 잦았다. 그래도 안씨에게 대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그리운 추억이다. ‘가겟집 딸’이었던 안씨는 부모 몰래 챙긴 군것질거리를 산 위에서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다.
“애들이 참 많았지. 지저분하긴 했어도, 다들 그렇게 살 때라 더러운 줄도 몰랐어. 지금은 많이들 떠나고 동네에 노인들밖에 안 남았지. 그때가 참 그리워.”
이주연(58)씨가 결혼해 대동에 자리잡은 1990년대 초반에도 마을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은 좁고, 집은 낡고, 사람은 많았다. 길거리 아무 데나 용변을 보고, 쓰레기를 갖다 버렸다. 이씨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술 먹고 싸우고, 욕하고 그랬다”고 회상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주연·배정화·김현채·안선숙씨. 최예린 기자
■ 대동 산1번지에서 하늘마을로
김현채(60) 대동종합사회복지관장이 대동에 처음 온 건 1997년이다. 복지관에서 조사를 해보니 대동에 사는 걸 창피해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1년에 한번씩 사회조사를 해보면, 사는 곳을 부끄러워하고 자존감도 낮았어요. 살기 불편한 마을 환경도 문제였지만, 전쟁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란 부정적 인식이 크게 작용했어요. 나중에 들어온 젊은 사람들도 어떻게든 다른 동네로 나가고 싶어 했고요.”
당시 복지관 직원이었던 김 관장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산 아래 옹벽을 시작으로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벽에 그림이 있으면 노상방뇨나 쓰레기 투기가 줄어들고, 마을 분위기도 조금은 밝아질 거란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벽화를 그려나가던 중 2009년 마을을 변화시킬 큰 기회가 생겼다. 대전시에서 추진한 ‘무지개프로젝트’에 대동이 선정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비율이 높은 동네를 선정해, 주거·교육·문화·자활사업을 지원하는 정책이었다. 대동에서는 복지관 주도로 주거와 거리 환경을 정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사업이 추진됐다. 길을 넓히고, 가로등도 바꾸고, 주차장도 만들고, 벽화도 더 많이 그렸다.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건 ‘하늘공원’ 만들기였다. 그 당시 비만 오면 산에서 내려오는 토사가 골칫거리였다. 쓸려온 흙에 담이 무너지고 집이 부서지기도 했다. 산은 대부분 국유지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무단으로 밭을 일구고 있었다. 복지관은 무지개프로젝트 예산으로 무허가 경작지를 정비해 주민 쉼터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다. 경작하던 주민들을 설득하고, 함께 일할 사람을 찾았다. 손기술 좋은 동네 중장년들이 모였다. 공원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대전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풍차도 놓았다. 공원은 대동의 명소가 됐다.
“마을 주민 50~60명을 모았는데 대부분 일용직 건설노동자 출신이었어요. 공사 기간 동안 그분들께 한달 급여 60만~70만원을 드렸어요. 그런데도 주민이 직접 만드니 비용이 40% 이상 절감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원에 ‘하늘공원’이란 이름을 붙였고, 마을도 그때부터 ‘하늘마을’이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8월24일 대전 대동 ‘하늘마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위원회’ 운영회의가 한창이다. 최예린 기자
■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하늘마을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하늘마을관리협동조합) 이사장인 배정화(43)씨는 2014년 서구 도마동에서 대동으로 이사 왔다. 큰아이 6살 때였다. 아이 손을 잡고 동네 한바퀴 도는데 “벽화가 정말 예쁘다”며 아이가 좋아했다. 아침마다 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에 실려온 나무·꽃향기 덕분에 하루하루가 캠핑 같았다고 한다. 집에서 내려다보는 야경도 일품이었다.
복지관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기러 갈 때마다 만나는 이웃들도 정겨웠다. 복지관을 오가며 사람들의 얼굴을 익혀가던 배씨는 2015년 꾸려진 ‘대동 아름다운 마을 만들기 위원회’(아마위)에도 참여하게 됐다. 아마위는 쓰레기 투기가 빈번했던 곳에 화단을 만들고, 정기적으로 마을을 돌며 쓰레기를 주웠다. 벽화도 꾸준히 그렸고, 주민 역량을 높이는 교육도 아마위를 통해 진행했다. 소극적이고 수줍어하던 주민들도 아마위 활동을 통해 점점 자신감을 얻고 활달해졌다. ‘내가 사는 곳을 내 힘으로 바꾸는’ 경험이 쌓인 결과였다.
2019년에는 도시재생뉴딜사업(우리동네살리기)에 대동이 선정됐다. 이때 행정과 주민을 연결할 중간 조직으로 하늘마을관리협동조합을 만들고, 배정화씨와 김현미(39)씨를 각각 이사장과 사무국장으로 추대했다. 대동 뉴딜사업에는 115억2천만원의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됐다. 주차장 조성, 골목길 정비, 벽화 정비, 노천극장 조성, 공가·폐가 정비, 집수리, 슬레이트 지붕 정비 등 다양한 사업이 올해 말까지 진행된다. 하늘마을관리협동조합은 마을 거점 시설인 달빛아트센터와 마을공방을 위탁 운영하고, 주민 주도의 지역 의제 해결을 위한 공모 사업도 벌인다.
■ 마을과 함께 성장하는 주민들
지난 8월 말 하늘마을관리협동조합을 찾았을 때 사무실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다. 아마위 운영회의였다. 회의에 참석한 운영위원 12명은 30대 청년부터 40대 마을 활동가, 60대 마을 통장까지 다양했다.
“하나. 우리는 건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함께한다! 둘. 우리는 지역 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주민과 함께 성장한다!”
참석자 모두가 아마위 행동강령을 소리 내 읽고 시작된 회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9월로 예정한 마을 벽화 그리기 일정부터 구매할 준비물, 가을 선진지 견학 일정과 장소를 정하는 것까지 각자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벽화 그릴 때 물통은 쓰고 남은 일회용 컵을 이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김현미 사무국장의 제안에 “벽화 그리기 전까지 모두 틈틈이 일회용 컵을 모아보자”고 8통장 송난영(52)씨가 호응했다. 회의가 끝난 뒤 이주연씨에게 “마을 일에 왜 이토록 열심이냐”고 물었다. 이씨는 40대에 신장병을 앓고 이후 10년째 마을 봉사를 하며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며 말했다.
“이 마을 어르신들 대부분 무허가 건물에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만약 재개발이 되면 그분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됩니다. 마을을 더 아름답게, 살기 좋게 만들려고 악착같이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