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는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는 척도다.
독일 중서부 헤센주에 있는 카셀현은 메르헨(동화)가도 가운데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가로수길 구간을 보유하고 있어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메르헨가도는 독일 북쪽 브레멘에서 남쪽 하나우까지 이어진 길이 600㎞가량의 도로로, 작은 연못과 지평선까지 이어진 들길 등을 품고 있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메르헨가도가 지나는 도시들은 독일 동화 작가이자 언어학자인 그림 형제가 독일 각 지역의 전설과 민담 등을 수집해 펴낸 ‘그림 동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메르헨가도 같은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시숲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된 법은 도시숲 등에 관한 기본계획에 우수한 자연경관을 조성하고 보전하는 것은 물론 관리 기술과 활용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가로수 전정(가지치기)을 과도하게 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은 해마다 가로수 관리 계획을 세우고 계획 외 가지치기를 할 경우 전문가 등의 의견을 듣도록 했다. 가로수 가지치기 계획은 지역민과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가로수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도시숲법은 개정됐지만 올봄에도 닭발처럼 변한 흉물 가로수는 여전히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나무둥치나 주요 가지가 병든 가로수들이 적지 않아 가지를 길게 남겨두면 강풍에 꺾여 보행자가 다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가로수 가지가 배전선로와 접촉하거나 도로변 상가 간판을 가린다며 반발하는 민원도 적지 않다. 김철응 한국가로수협회 이사는 “비바람이 불면 하중이 가지 무게의 4~5배로 커져 병든 가지가 견디지 못하고 부러진다. 안전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정을 많이 해야 할 가로수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가로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로수 전문가들은 가로수 민원과 관련한 현실적 해법을 경기도 수원시의 가로수 관리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수원시는 2005년부터 ‘테마 전지’를 실시한 데 이어 도시숲 조례를 제정하고 2020년에는 조경학과 교수, 식물원장, 정원작가,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도시숲위원회(옛 도시림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가지치기 시기에 맞춰 봄과 가을에 정기회의를 열고, 도로 확장과 신설, 변경 등이 있으면 수시로 회의를 열어 주변 상가와 건물, 환경을 고려해 가로수의 목표 높이와 수종 등을 논의한다. 이런 노력으로 수원 창룡대로 은행나무길과 팔달대로 양버즘나무길이 탄생했다.
이정욱 수원시공원녹지사업소 가로수팀장은 “은행나무길에는 한전 배전선로가 지나가고 상가가 많아 가로수 은행나무의 상부와 하부를 전지하다 보니 깔때기 모양이 됐다. 그게 보기 안 좋아 은행나무를 동그랗게 다듬었더니 시민들이 솜사탕나무, 막대사탕나무라고 부르며 반긴다”고 했다. 또 “양버즘나무는 상부 수관이 커지면 비바람에 쓰러질 위험이 있어 관리 차원에서 네모 형태로 전정을 했다. 예쁘게 가꾸기보다 주변 환경을 살펴 가로수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산림청은 오는 30일 광역·기초단체 가로수 담당자 130여명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가로수 관리 지침을 공유할 방침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수행하는 ‘수형 관리 중장기 연구’ 결과가 나오면 시·도에 체계적인 가지치기 방법도 제시할 계획이다. 김주열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장은 “가로수 관리는 지자체 규모와 단체장 의지 등에 따라 지역별로 차이가 난다”며 “관리 지침을 세밀하게 제시하면 지역 특성과 맞지 않을 수 있고, 느슨하게 만들면 관리가 안 될 가능성이 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늘려나가기 위해 최선의 조합을 찾겠다”고 말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전국에 산재한 가로수는 약 857만그루다. 병충해에 걸리지 않고 대기 정화 능력이 강해야 가치 있은 가로수로 평가받는다. 주요 수종은 곰솔, 메타세쿼이아, 배롱나무, 벚나무, 은행나무, 양버즘나무, 느티나무, 무궁화, 단풍나무, 소나무, 먼나무, 야자수, 복자기나무 등이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