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청 여성공무원들이 17일 오후 청주시청에서 ‘인간 방패’ 논란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젠더 폭력’ 의혹을 부인했다. 청주시 제공
“강제동원 사과하라”(노조)→“유감이다. 부서장 엄중 경고 조처한다”(시장)→“성인지·평등 의식 부족했다”(부시장)→“젠더 폭력 안 당했다”(공무원)
지난 16일 오전부터 17일 오후까지 이틀 동안 충북 청주시에서 나온 이른바 ‘여성공무원 인간 방패 논란’과 관련해 노조, 시장, 부시장, 공무원 등이 내놓은 갈팡질팡 의견문이다.
출발은 16일 오전 전국공무원노조 청주시지부가 김항섭 청주부시장을 찾으면서부터다. 공무원 노조는 지난 12일 오후 열린 도시공원위원회 회의에 앞서 청주시 한 부서가 부서원 등을 동원해 시민단체의 회의장 출입을 막은 것이 잘못이라고 김 부시장에게 항의했다. 노조는 “공무원 강제동원 관련 사과와 동원 금지, 동원 관련 진상 조사와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했고, 부시장이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범덕 청주시장이 16일 오후 청주시청 모든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 청주시 제공
노조의 말 대로 시장은 사과했다. 이날 오후 4시9분 한범덕 청주시장은 모든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한 시장은 메일에서 “여성 공무원들이 시민단체의 진입을 막는 과정에서 심려를 끼친 데 시장으로서 유감의 뜻을 전한다. 여성공무원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겨 드린 점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시장은 부서장 엄중 경고, 성인지 교육 강화, 인권 중시 직장문화 선도 약속도 메일에 담았다.
17일 오전 9시40분 김항섭 부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부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여직원들을 앞장세웠다는 논란이 야기된 데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한다. 성 인지, 평등 의식이 부적했다는 점 깊이 자각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한범덕 시장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한 시장이 전날 메일을 통해 밝힌 내용을 언론 등에 되새김했다.
충북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꾸린 청주시민 행동비상대책위원회가 15일 청주시청에서 청주시가 여성공무원 등을 동원해 시민단체 등의 출입을 막은 것 등을 항의하고 있다. 청주시민 행동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이날 오후 2시 20분께 여성공무원 18명이 다시 청주시청 기자회견장에 섰다. 지난 12일 도시공원위원회 당시 시민단체의 회의장 출입을 막았던 20여명 가운데 일부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신경아 도시공원지키기 집행위원은 “날치기 회의를 막으려고 출입을 시도했는데 여성공무원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인간 띠를 만들어 시민을 막았다. 성을 도구화해 여직원을 ‘인간 방패’삼은 청주시의 비열한 행태에 경악했다”고 말했다. 충북인권연대 등도 여성공무원들을 앞세운 청주시의 행태를 ‘반인권적’이라며 비판하고,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 여성공무원은 시민단체가 주장한 ‘젠더 폭력’을 부정했다. 이들은 “한 번도 젠더 폭력을 당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남성 동료들을 성추행 시비로부터 지키기 위해 여성공무원들이 앞에 섰다. 자발적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성폭력을 당하지 않았는데 피해자로 비치는 것에 매우 분개한다. 오히려 시민단체의 폭력적 모습에 놀란 직원들이 많았다. 대책위가 사과하라”고 덧붙였다.
노조의 항의, 시장·부시장의 유감 표명과 사과, 해당 부서장 경고 조처 등과 사뭇 다른 내용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도한 한 여성공무원은 “오늘 회견은 당시(12일) 현장에 있던 모든 여직원의 공통된 뜻은 아니다. 몇몇은 우리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모두 윗선의 지시로 동원돼 현장에 가긴 했지만 일부는 자발적으로, 일부는 마지못해 시위대를 막았을 것이다. 다만 모든 여직원을 성폭력 피해자로 낙인 하는 듯해 나섰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평소에도 꽃처럼 일하는 게 아니지만 시위 등 업무에 동원되는 것은 문제이며, 시장께서 이 부분을 사과했다고 본다. 부서장 경고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효윤 충북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해당 여성공무원들의 기자회견이 자의적이었는지, 윗선의 지시에 의한 타의 적이었는지 진의를 먼저 파악해 봐야 한다. 자의적이었다면 청주시 공직사회 전반에 갈린 인권 감수성, 성인지 등이 극히 낮다는 것이고, 타의 적이었다면 일종의 상관에 의한 폭력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노조, 직원, 시장 간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