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충남 서산 대산읍 독곶리 롯데캐미칼 납사분해센터(NCC) 근처 한 상점 모습. 최예린 기자
공장 근처 상가와 주택은 유리창이 모조리 깨져 있었다. 뼈대만 드러낸 창틀 철골이 간밤의 충격을 증언이라도 하듯 휘어져 있었고, 창틀 안쪽에는 의자와 가구 등이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국밥 등을 파는 한 식당은 천장이 내려앉았는데, 무너진 천장 아래로 주황색 가스 배관이 위태롭게 늘어져 있었다. 4일 오후 충남 서산 대산읍 독곶리는 폭격을 맞은 듯 어수선했다. 주민들은 간밤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사고는 이날 새벽 3시께 발생했다. 이 마을 한복판에 있는 롯데케미칼 납사분해센터(NCC)에서 불이 나고 폭발이 이어진 것이다. 목격자들은 ‘쾅’ 하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기둥이 수십m 높이로 크게 솟구쳤고, 주변 하늘이 빨갛게 보일 정도로 위협적이었다고 전했다. 이날 사고로 이 공장 직원과 주민, 119구급대원 등 최소 26명이 중경상을 입고 서산과 천안 의료기관으로 옮겨졌다. 폭발사고 뒤 충남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하고 펌프·화학차 등 66대와 소방관 223명 등 274명을 동원해 진화에 나서 두시간여 만인 새벽 5시11분 큰 불길을 잡았다.
폭발에 따른 충격파는 수십㎞ 떨어진 당진시민까지 깜짝 놀랄 정도로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케미칼은 불이 나자 대산공장의 10개 시설 가운데 7개 시설의 가동을 중단했다. 납사(나프타)분해센터는 1200도 이상 초고온으로 납사를 열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열분해 가솔린 등을 생산한다. 소방당국이 완전히 불을 끈 것은 이날 아침 9시께다.
4일 충남 서산 대산읍 독곶리 롯데케미칼 납사분해센터(NCC) 근처 한 다세대 주택 모습. 최예린 기자
주민들은 사고 당시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편의점에 모인 주민과 인근 공장의 노동자들은 “전쟁이 난 줄 알고 불안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가족과 전화 연결이 안 돼 피가 말랐다”고 말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 편의점은 급한 대로 깨진 유리창을 비닐과 종이상자로 막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공장 정문 앞 다세대 주택에 사는 주민 ㄱ(56)씨는 “핵폭발이 일어난 것 같았다. 방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데, 굉음과 함께 엄청난 압력으로 앞뒤 창문이 다 깨져 방 쪽으로 쏟아졌다. 창문 앞에 널어둔 빨래들이 유리 파편을 막아줘 다치진 않았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ㄱ씨와 같은 건물에 사는 다른 주민은 유리 파편이 눈에 들어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사고 현장과 약 300m 떨어진 이 건물에는 현재 18가구가 살고 있다. 집마다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창문이 아예 방 안쪽으로 쓰러진 집도 보였다.
4일 충남 서산 대산읍 독곶리 롯데케미칼 납사분해센터(NCC) 근처 한 상점 모습. 최예린 기자
사고로 당장의 거처가 막막해진 노동자들도 있다. 주민 ㄴ(41)씨는 “폭발 소리를 듣고 달려와 보니, 주민들이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해 있었다. 깨진 유리창 등 부서진 것들을 수리하고 방 안의 유리 파편들을 치워야 거주자들이 집에 다시 들어가 잘 수 있는데, 롯데케미칼도 서산시도 아무 연락이 없어 답답하다. 여기 사는 분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라 당장 오늘 밤을 어디서 보내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납사분해센터의 압축 공정(컴프레서 하우스)에서 문제가 발생해 폭발하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잔불 진화 등 현장이 정리되는 대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충남도 서북부권환경관리단 등과 함께 합동 감식해 화재 원인을 밝힐 예정이다.
소방대원들이 4일 사고가 난 충남 서산 대산읍 독곶리 롯데케미칼 납사분해센터(NCC)에서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충남도 제공
충남도는 이날 사고에 따른 유해물질 누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충남도 서북부환경관리단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해 소화수가 하천으로 흘러들어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뿌린 물을 폐수처리장으로 보냈다”며 “오염도도 측정했는데 에틸렌 농도가 6~10ppm(기준 200ppm) 수준으로 나타나 오염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서산/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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