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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니 ‘약방 박물관’ 만들면 좋겠어”

등록 2020-07-14 19:53수정 2020-07-15 02:37

‘청인약방’ 괴산군 기증한 신종철씨
1958년 지인 도움으로 열어 63년째
6·25 첫날부터 쓴 일기장 70여권도
“시세 2천만원이지만 천하명당 소문”
200년생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한 청인약방은 동네 사랑방이자 관광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진 괴산군 제공
200년생 느티나무 그늘에 자리한 청인약방은 동네 사랑방이자 관광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진 괴산군 제공

“죽어서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한평생 잘 살았으면 이제 돌려줘야지. 약방 박물관 같은 걸 만들면 좋을 텐데….”

충북 괴산군 칠성면 고향에서 ‘청인약방’을 운영해온 신종철(87)씨가 13일 약방을 괴산군에 기증하기로 했다. 1958년 3월1일 약방 문을 열었으니, 꼭 63년째 함께했다.

약방은 터 73㎡에 건물 33.72㎡로 아담하다. 목조 건물에 함석지붕, 여닫이문, 부엌 딸린 단칸방 등 변함이 없다. 바로 앞 200살 넘은 느티나무처럼 그도 약방을 내내 지키고 있다. 간판만 ‘청인약점’에서 ‘청인약포’를 거쳐 ‘청인약방’으로 바뀌었다.

“대학에 가려고 일하면서 돈을 모아보기도 했는데 집안 형편으로 포기했어. 인천에서 일할 때 청주의 지인 도움으로 약방을 내면서 청주의 ‘청’, 인천의 ‘인’을 따 간판을 건 게 지금까지 이어졌어. 세상은 바뀌었지만 나도, 약방도 크게 안 달라졌어. 둘 다 나이는 좀 많이 먹었지만.”

약방은 허름하기 그지없지만 지역을 지나는 길목이다. 예나 지금이나 주민·지인 등이 틈틈이 들러 이야기 나누는 사랑방이다. 그는 약업사로 살면서 주례만 1700여 차례 선 지역의 어른이기도 하다. 그의 주례는 늘 무료였다. “전쟁 지나 인구가 폭증하자 정부에서 약업사 시험을 통해 약방 허가를 내줬지. 약은 팔았는데 돈은 못 모았어. 보증 잘못 서 고생했고, 선거에도 몇 차례 나섰거든. 하지만 사람은 엄청 드나들었지. 그게 보람이었어.”

미수를 앞둔 신종철씨가 충북 괴산군 칠성면 고향에서 63년째 운영해온 청인약방을 괴산군에 기증했다. 사진 괴산군 제공
미수를 앞둔 신종철씨가 충북 괴산군 칠성면 고향에서 63년째 운영해온 청인약방을 괴산군에 기증했다. 사진 괴산군 제공

약방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괴산군은 지금 부동산 시세만으론 2천만원 안팎 정도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신씨는 다른 기억을 지니고 있다. “1970년 풍수지리 하는 이가 와서 천하의 명당이라며 그때 돈으로 1억원을 줄 테니 팔라고 했지만 안 팔았어. 얼마 전엔 미국에서 사업했다는 이가 50억원을 준다고 했지만 거절했어. 삼남매 자식들 모두 잘 자랐고, 나도 돈 욕심 없어.”

그의 바람은 ‘약방 박물관’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6월25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약방과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쓰고 기록해온 지독한 메모광이다. 일기장만 줄잡아 70여권이다. “아마 전국 어디를 가도 옛 약방 모습과 약방 관련 이야기 등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은 없을 거야. 방송 등을 통해 약방 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2천명 안팎은 구경을 오곤 하는데 이 참에 약업 연구, 근현대 역사 문화 보존 등을 위한 약방 박물관 같은 곳으로 거듭나면 좋겠어.”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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