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바깥에 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가전제품 등이 늘어져 있다.
물에 젖고 흙 묻은 냉장고, 세탁기, 싱크대, 침대, 텔레비전, 에어컨, 선풍기, 밥솥, 냄비, 책…….
3일 오전 10시께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에는 침수돼 못 쓰게 된 가전제품과 생활용품들이 잔뜩 늘어져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대전에 비가 쏟아진 지난달 29일 새벽 이 아파트 5개 동 중 2개 동 1층과 주차장이 빗물에 잠겼다. 이 탓에 1층에 사는 28세대 140여명이 침수 피해를 당하고 이재민이 됐다.
갑작스러운 물난리로 1층에 사는 주민 ㅇ(51)씨가 목숨을 읽기도 했다. ㅇ씨가 숨진 채 발견된 아파트 출입 계단 아래에는 흙 묻은 아이들 자전거와 킥보드가 놓여 있었다.
3일 오전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어수선하게 놓인 쌓인 생활용품 사이에서 육군 32사단 장병들이 일렬로 서 아파트 지하에 남은 흙을 퍼냈다. 자원봉사자들은 군인들이 퍼 놓은 진흙 속에서 쓰레기가 된 생필품들을 골라냈다. 시꺼먼 진흙에서 역한 구정물 냄새가 진동했다. 전날도 많은 자원봉사자가 이곳을 찾아 복구를 도왔다. 집 바깥에 쌓인 가전제품과 책 등도 자원봉사자들과 육군 장병, 공무원 등이 힘을 합해 꺼내 놓은 것들이다. 장판과 벽지도 모두 뜯어냈다. 닷새 동안 1470명이 피해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정림동 마을활동가 모임인 ‘수밋들어울벗’ 회원들도 이날 복구 작업에 힘을 보탰다. 이 모임 회원인 김수아(47)씨는 “뉴스를 보고 직접 와서 보니 피해가 심각했다. 우리 동네 일이니까 더욱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마음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복구 현장에 나온 김한결(16)군은 “진흙을 퍼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언젠가 우리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침수 피해를 당한 코스모스아파트 주민 신대호(75)씨의 집 안 모습. 신씨는 거동이 불편해 다 마르지 않은 집에서 미리 들어가 생활하고 있다.
친인척 집 등 갈 데 없는 이재민 23명은 구청에서 마련한 침산동 청소년수련원과 장태산휴양림의 숙소에서 머물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 아직 마르지도 않은 집에 들어가 생활을 시작한 어르신들도 있다. 디동 1층에 사는 신대호(75)씨는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해 왔다 갔다 하기 힘들다. 첫날만 체육관에서 자고 물 빠진 집에 들어보니 암담했지만, 자원봉사자 도움으로 집이 빨리 복구되고 있다. 잘 때 곰팡내가 심해 힘들지만, 그래도 저분들 고마운 마음 덕분에 이겨내고 있다”고 했다.
거동이 힘든 98살 아버지를 모시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는 윤인자(60)씨는 “순식간에 물이 집안까지 밀려 들어와 신발도 못 신고 아버지와 함께 위층으로 대피했다. 가전제품이고 옷이고 대부분 물에 젖어 버렸다. 다시 비가 온다니 불안하다”며 “비 때문에 생활하던 것들이 완전히 망가져 부러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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