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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는 산으로 출근, 바다로 퇴근… ‘워케이션’ 중입니다

등록 2021-11-10 04:59수정 2021-11-10 15:03

집·사무실 아닌 지역 체류형 근무제도
강원·경남·경북·제주 등 전국서 실험 중
강원도 평창군이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미탄면 소규모 농촌 마을인 어름치 마을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쉼’을 즐기는 형태의 워케이션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한 참가자가 ‘차박 성지’로 알려진 육백마지기 인근 나무 그늘에서 일하는 모습. 평창군 제공
강원도 평창군이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미탄면 소규모 농촌 마을인 어름치 마을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쉼’을 즐기는 형태의 워케이션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한 참가자가 ‘차박 성지’로 알려진 육백마지기 인근 나무 그늘에서 일하는 모습. 평창군 제공

“보통 하루에 2시간씩 걸리는 ‘출퇴근 지옥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최고의 휴식이었습니다.”

서울 삼성동에 있는 마케팅 컨설팅 기업을 다니는 김종은(32) 대리는 지난달 25~26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한 호텔에서 머물며 일을 했다. 첫날은 호텔 근처에 마련된 공유사무실로 오전 9시에 맞춰 출근했고, 다음날은 아예 ‘잠옷’ 차림으로 호텔에 머물며 일했다. 저녁 6시가 되자 ‘칼퇴’ 한 뒤 ‘은하수 명소’인 강릉 안반데기를 둘러보고, 왕복 7.4㎞로 국내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 정상에 오르는 등 언택트 관광을 즐겼다. 직장이 있는 서울에서 차를 타고 2시간30분, 직선거리로 140㎞나 떨어졌지만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있으니 업무에선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마침 회사에서도 코로나19에 맞춰 재택·원격근무에 관심이 많아 김 대리의 도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대리는 활짝 웃으며 “서울에선 아침 일찍 출근길부터 사람들에 시달리면서 에너지를 낭비했다면, 평창에선 업무 내내 에너지를 충전하는 느낌이었다. 주어진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 업무 효율도 올라갔다. 회사에 돌아갔더니 다들 부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강원도관광재단이 지난 3월 인터파크와 손잡고 ‘강원 워케이션 특화상품’을 출시해 두달 만에 8238박이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강원도관광재단이 강원도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홍보물. 강원도관광재단 제공
강원도관광재단이 지난 3월 인터파크와 손잡고 ‘강원 워케이션 특화상품’을 출시해 두달 만에 8238박이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 사진은 강원도관광재단이 강원도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홍보물. 강원도관광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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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휴가를 동시에…워케이션 뜬다

코로나19로 재택이나 원격근무가 늘면서 ‘워케이션’(workation)이 뜨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의 합성어다. 집이나 사무실이 아닌 곳에 머물면서 일을 병행하는 ‘지역 체류형’ 근무제도다.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지고,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흐름에 눈에 띄게 대응하는 곳이 강원도다. 김종은 대리가 참여한 프로그램도 강원도관광재단이 지난달 10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한 ‘강원 워케이션 시범 프로그램’이다. ‘산으로 출근, 바다로 퇴근’을 주제로 평창과 고성에서 1명당 14만3천원으로 주중 3박4일 일정을 진행했는데 205명이 참여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참가자에게는 3박4일 동안의 숙박과 함께 공유사무실, 해당 지역 추천 관광 프로그램 안내, 관광지 입장권 등의 혜택이 제공됐다.

노동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서울에서 음식여행 기업을 운영 중인 강태안(54) 대표는 강원도 고성에서 진행된 워케이션에 참여한 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몇시간씩 일했는데 너무 좋았다. 화상회의 등 정보기술이 발달한 만큼 서울로 출근하지 않아도 현지에서 직원을 채용하고, 성과 위주로 관리하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문화기획·도시재생 기업을 운영 중인 정은비(43) 대표도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일을 해보니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나 노동력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다. 주위에 적극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창희 강원도관광재단 대리는 “상대적으로 근무 조건이 자유로운 정보기술(IT) 업계 쪽 직장인들이 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훨씬 다양한 직업군과 연령층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워케이션 유형 요약. 자료: 한국관광공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앞서 강원도관광재단은 지난 3월 인터파크와 손잡고 ‘강원 워케이션 특화상품’을 기획한 바 있다. 이 상품은 출시 두달 만에 8238박이 판매되는 등 대박을 터뜨렸다. 덕분에 비수기로 꼽히는 주중 숙박이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25% 이상 증가했다. 강원도관광재단은 지난달 12일 ‘강원도 워케이션 시즌2’를 선보였고,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3703박(3일 현재)이 판매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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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택근무?’ 전국이 워케이션 실험장

워케이션이 뉴노멀 시대 새로운 노동방식으로 주목받으면서 강원도를 넘어 전국에서 실험이 진행 중이다.

경남에서 진행 중인 ‘섬택근무’도 눈길을 끈다. ‘경남의 살고 싶은 섬 1호’로 선정된 통영시 두미도에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지난 5월10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섬택근무’는 말 그대로 섬에서 지내며 근무하는 것이다. ‘원격근무’는 정보통신기술(ICT)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데 두미도에는 이미 8년 전 광케이블이 깔려서, 뭍에서와 다름없이 인터넷·스마트폰 등을 사용할 수 있다.

공단은 두미도 북구마을의 옛 어민회관을 개조해 사무실 ‘스마트 워크센터’를 설치했고, 최대 10명까지 근무할 수 있다. 숙소는 사무실과 나란히 있는 경로당의 2층에 마련했다. 근무 인원과 기간은 사업 성격에 맞춰 달라지지만, 출장 형식의 근무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한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사회가치실현팀장은 “낙후한 섬을 지원하는 ‘1사1섬 운동’을 하는 기업은 많지만, 대부분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 이를 극복할 지속가능한 사업을 찾다가 섬택근무를 기획하게 됐다. 직원들의 반응은 좋다”고 말했다.
제주도가 지난 1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서귀포 시내에서 진행 중인 워케이션 시범사업 ‘아일랜드 워크랩스’를 위해 조성한 공유사무실 모습. 제주도는 시범운영을 통해 사업을 보완한 뒤 내년부터 제주 전 지역으로 워케이션 운영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주도 제공
제주도가 지난 1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서귀포 시내에서 진행 중인 워케이션 시범사업 ‘아일랜드 워크랩스’를 위해 조성한 공유사무실 모습. 제주도는 시범운영을 통해 사업을 보완한 뒤 내년부터 제주 전 지역으로 워케이션 운영을 확대할 계획이다. 제주도 제공

경북도는 ‘기업연계형’ 워케이션을 추진 중이다. 지난 3월부터 기업과 경북도 내 마을 간 협약을 맺어 기업 직원들이 마을에서 재택근무, 체험, 관광 등을 하는 ‘기업연계 농촌힐링워크’를 시작했다. 경북도는 ‘워케이션’을 위해 업무 공간은 물론 숙박, 농촌체험관광을 지원한다. 현재까지 1호점 의성군 만경촌은 경기도 성남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기업과, 2호점 문경시 궁터마을이 서울 마포구의 식품전문기업, 3호점 상주시 승곡마을은 경기도 안성의 식품전문기업과 각각 협약을 맺었다. 이수현 경북도 농업정책과 주무관은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수도권 기업과의 교류가 더욱 확대되면 지역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워케이션 최적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주도는 내년부터 워케이션을 전면 확대할 분위기다. 제주도는 지난 1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서귀포 시내에서 시범 프로젝트인 ‘아일랜드 워크랩스’를 진행하고 있다. 제주 도는 칠십리 해안과 새섬이 보이는 서귀포 시내에 원격근무가 가능한 공유사무실을 조성했으며, 이번 프로젝트에 신청한 수도권 25개 기업 임직원 31명을 대상으로 4주 동안 다양한 체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도는 시범운영을 통해 원격근무 도입 기업과 임직원한테 필요한 지원사항을 보완하고, 내년에는 제주 전 지역으로 워케이션 운영을 확대할 참이다.

정은주 제주도 투자유치팀장은 “애초에는 15명만 받으려 했는데 신청이 폭주해 5일 만에 조기 마감했다. 처음엔 ‘과연 워케이션이라는 게 될까’라며 반신반의했는데 사업을 하면서 인기를 실감했다. 워케이션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면, 본사의 일부 기능과 인력을 분산하는 원격사무소(위성 혹은 거점오피스)가 늘고 있는데 이를 제주로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텔이나 콘도 등 기존 숙박시설을 벗어나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서 먹고 자면서 어울리는 워케이션에도 관심이 쏠린다. 강원도 평창군은 지난달 15일부터 24일까지 미탄면 어름치 마을에서 20명이 참여한 워케이션 행사를 진행했다. 호텔과 리조트 등을 중심으로 진행된 강원도관광재단의 워케이션과 달리 유명 관광지가 아닌 소규모 농촌 마을에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쉼’을 즐기는 형태다. 잠은 주민 민박을 이용한다. 이정선 평창군청 관광마케팅담당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주로 일하고 오후에는 ‘차박’ 성지로 알려진 육백마지기를 방문하는 등 여가를 즐기는 참가자도 있었다. 한국형 워케이션의 본보기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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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케이션 지속 가능성은?

전문가들은 워케이션이 코로나19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향후 전 세계적으로 지속해서 성장할 분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빅데이터 기반 신규 관광트렌드 및 사업 발굴’ 보고서(2021년 10월)를 보면, 소셜빅데이터 기반 예측분석 결과 국내외 모두 성장주기상 현재 도입기에 있고, 향후 5년간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다. 또 한국관광공사의 ‘워케이션 실태조사 및 방한관광 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2021년)를 보면, 한국의 기업 인사 담당자 63.4%가 워케이션에 긍정적으로 응답했으며, 61.5%는 업무의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또 직무 만족도 증대 84.6%, 직원 삶의 질 개선 92.3%, 직원 복지 향상 98.0% 등 워케이션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인식도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워케이션 성망 전망치. 자료 한국관광공사
글로벌 워케이션 성망 전망치. 자료 한국관광공사

고용노동부의 ‘재택근무 활용실태 설문조사’ 관련 자료(2020년 8월 기준)를 봐도, 48.8%의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운영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이후에도 51.8%의 기업이 재택근무를 계속 시행하겠다고 응답했다. 원격근무가 영구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도 35.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73.9%는 재택근무를 통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김은희 한국관광공사 관광컨설팅팀 전문위원(관광학 박사)은 “노동의 가치가 여가의 가치를 압도하던 시대는 끝났다. 노동과 여가가 모두 중요하다는 개념을 넘어 노동과 여가, 일상과 업무가 적절하게 섞이는 워라블(Work-Life Blend) 시대가 오면서 워케이션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삶의 방식이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케이션 활성화가 환경보호는 물론이고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균형 발전 등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동영 전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지역 균형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진 기업을 중심에 둔 산업적 입지가 중요했고, 이는 ‘수도권 집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일자리와 일하는 곳이 일치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오면 노동자가 일할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노동자는 도시보다는 생태적 환경이 우수한 지방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토연구원의 차미숙 선임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미래의 일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주로 서울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요즘의 젊은이들이 워케이션과 같은 기회를 통해 ‘휴가지로만 생각했던 시골’을 ‘일도 가능한 삶의 공간’으로 느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한국만의 방식 등에 대한 고민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박수혁 허호준 최상원 김규현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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