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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 이제 좀 가면 안 될까요?”…눈치 살피는 지방의회

등록 2022-10-20 08:00수정 2022-10-20 08:54

부산지역 기초의회의 국외출장 소식이 알려지면서 외유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연제구의회의 해외연수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도심 곳곳에 걸렸다. 부산 연제 주민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부산지역 기초의회의 국외출장 소식이 알려지면서 외유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연제구의회의 해외연수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도심 곳곳에 걸렸다. 부산 연제 주민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민생경제 악화와 지난여름 폭우 등 자연재해에 따른 시민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해외연수 예산 전액 반납을 결정했습니다. 반납한 예산이 시민들을 위해 사용됐으면 좋겠습니다.”(이재용 강원 원주시의회 의장)

#“해외연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나가서 이것저것 배울 것도 많습니다. 사전에 준비도 더욱 철저히 하고, 확실하게 프로그램을 짜서 다녀올 계획입니다. 다녀온 뒤에는 토론회 등을 열어 해외연수에서 배운 것을 공유하는 자리도 가질 겁니다.”(이기동 전북 전주시의회 의장)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연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의회 차원에서 ‘해외연수 예산 반납’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환율·물가 등 심상찮은 경제 상황과 서민 생활의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코로나 기간 동안 중단했던 국외연수를 재개하는 것에 지방의원들이 적잖은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납한 연수 예산은 주민 안전이나 복지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반면, 내실 있는 준비를 통해 국외연수의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시·구의회 의원들이 2019년 기자회견을 열어 외유성 국외연수 근절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이들은 “외유성 국외연수로 물의를 빚으면 경비를 모두 반납하고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제공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시·구의회 의원들이 2019년 기자회견을 열어 외유성 국외연수 근절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이들은 “외유성 국외연수로 물의를 빚으면 경비를 모두 반납하고 정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제공

시민 아픔을 함께…해외연수비 반납

강원도 원주시의회는 지난달 27일 의원 간담회를 열어 올해 책정된 의원 해외연수 예산 8천만원을 전액 반납하기로 했다. 올해 강원도내 지방의회에서 해외연수 예산 반납을 결정한 곳은 원주가 처음이다. 원주시의회가 해외연수 예산을 반납한 것은 2020년과 2021년에 이어 3년째다. 이재용 시의회 의장은 “이전에는 코로나19 탓에 어쩔 수 해외연수 예산을 반납했다. 하지만 올해는 해외연수를 갈 수는 있지만 지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시 재정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동료 의원 24명 모두가 뜻을 모았다”고 전했다.

인천 연수구의회도 지난달 27일 열린 본회의에서 해외연수 예산 7511만원 반납을 결정했다. 의원들이 “코로나19와 물가 상승으로 지역 경제가 어려운데 해외연수를 가지 말고 그 예산으로 시민들과 밀접하고 긴급한 현안 사업에 편성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반납한 예산은 경로당 기능 보강과 맨홀 추락방지 시설 설치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편용대 연수구의회 의장은 “시민 이익과 지역 발전을 위해 결단을 내렸고, 동료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동참해줬다. 앞으로도 주민 입장에서 경청하고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경기도 김포시의회는 지난 8월 해외연수 예산 8473만원 삭감을 결정한 바 있다. 김인수 김포시의회 의장은 “의회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맨 만큼 김포시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예산을 사용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광주에서는 5개 구의회 가운데 광산구의회만 유럽과 일본 등으로 국외연수를 추진하다 취소했다. 진보당·정의당 의원들이 애초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강현 광산구의원(진보당)은 “해외연수를 갈 만한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다. 진보당 의원 3명은 안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윤희 광산구의원(정의당)도 “의정활동을 하면서 아직 해외연수를 가야 할 정도로 궁금한 사항이 없어 불참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윤혜영 광산구의회 부의장은 “연수 참여 의원 모집이 쉽지 않았다. 이번엔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연수 예산 자진 반납 움직임이 가장 적극적인 곳은 전북이다. 14개 기초의회 가운데 9곳이 해외연수 예산 자진 반납을 결정했다. 첫 깃발은 김제에서 올랐다. 김제시의회는 지난달 초 해외연수 예산 6900만원을 전액 반납하기로 했다. 쌀값 폭락 등으로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인 만큼 국외연수가 적절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김영자 시의회 의장은 “반납한 예산은 지역경제 활성화 예산으로 바꿔 신속하게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완주군의회, 남원시의회도 한마음으로 예산 자진 반납 물결에 동참했다. 고창과 부안, 임실, 진안군의회는 처음부터 아예 해외연수 예산 자체를 편성하지 않았다. 전북에서는 전주시의회 1곳만 국외연수(1억500만원, 1명당 300만원씩 35명)를 추진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참석자들이 2019년 열린 정기총회에서 “변화와 혁신으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제공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참석자들이 2019년 열린 정기총회에서 “변화와 혁신으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자”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 제공

취임 3개월 만에…국외연수 봇물

하지만 모든 기초의회 분위기가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는 기초의회가 잇따라 국외연수를 추진해 시민단체로부터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현재 부산 16개 기초의회 가운데 국외연수를 계획 중이거나 이미 떠난 곳은 북구와 부산진구 등 9곳이다. 이 중 북구의회는 지난 6일부터 13일까지 노르웨이 등 북유럽으로 4200만원을 들여 국외연수를 떠났다.

이에 부산참여연대는 성명을 내어 “해외연수에 공무는 찾기 어렵고 여행에 공무를 끼워넣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금 관광’, ‘예산 낭비’, ‘외유성 연수’라는 비판이 따라붙으며 지방의회에 대한 시민 불신이 커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코로나19에 잇단 자연재해로 시름 깊은 지역민들을 위해 재난지원금을 편성해도 모자랄 판에 여행을 먼저 챙기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둔 2012년 정선군의회 의원들이 일본을 방문해 빙상경기장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 정선군의회 제공
2018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둔 2012년 정선군의회 의원들이 일본을 방문해 빙상경기장 시설을 견학하고 있다. 정선군의회 제공

충북 청주에서도 국외연수를 재개하는 분위기다. 청주시의회는 9~10월 모든 상임위원회가 국외연수를 다녀오거나 계획하고 있다. 환경위원회가 지난달 12~19일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 연수를 했다. 행정문화위원회는 지난달 22~29일 프랑스를 다녀왔다. 이달 말엔 4개 위원회가 일제히 네덜란드와 독일, 핀란드, 프랑스, 영국 등으로 국외연수를 떠난다. 대구시의회는 이달 안에 싱가포르와 베트남 등으로 연수를 떠난다.
지난 2015년 중국으로 국외연수를 떠난 강원도 영월군의회 의원들이 쿤밍농사전시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영월군의회 누리집 갈무리
지난 2015년 중국으로 국외연수를 떠난 강원도 영월군의회 의원들이 쿤밍농사전시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영월군의회 누리집 갈무리

국외연수를 자제하는 기초의회와 달리 광역의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겨레>가 17개 광역의회에 확인해보니, 해외연수 예산을 반납했거나 편성하지 않은 곳은 충북도의회 1곳(미편성)에 불과했다. 서울과 대구, 인천, 울산, 충남, 경남, 제주 등 7곳은 독일·오스트리아 등으로 연수를 떠났거나 추진 중이며, 부산과 광주, 대전, 세종, 경기, 강원, 전북, 전남, 경북 등 9곳은 아직 예산은 반납하지 않은 채 국외연수 실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한 광역의회 사무처 관계자는 “고환율·고물가 시대에 의정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초선 의원들도 해외연수를 의정활동의 당연한 보상처럼 여기는 등 세금으로 관광 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시·도 의회사무처끼리 해외연수 추진 여부를 문의하는 등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직 검토 중이라는 곳도 예산을 반납하지 않았다면 계속 눈치를 보다가 12월 크리스마스께 조용히 다녀올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지방의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은 꼭 필요하며, 해외연수도 잘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면서도 “지방의원의 국내외 연수가 지방의회, 의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지방의회 존폐 논란까지 초래하는 이유는 그 계획과 집행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관광성 연수라는 의혹을 자초하는 연수·교육이 빈발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기 초반인 만큼 지자체 현안에 대한 파악과 대처가 중요한 시기”라며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 아니더라도 연수를 떠나는 게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박수혁 기자, 전국종합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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