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깨어나는 함백산 야생화’를 주제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18번가 골목길에서 ‘엘이디야생화 공예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정선군 제공
석탄산업의 부흥과 폐광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탄광촌에 야생화가 피어올랐다. 살아 있는 꽃은 아니지만, 형형색색의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야생화가 골목길을 밝히면서 산골 마을은 어둠 속에서도 빛으로 깨어난다.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 18리(18번가)는 꽃과 빛의 땅이다. 집집마다 주민들이 만든 엘이디야생화가 내걸렸다. 곽화숙 엘이디야생화 작가의 수업을 들은 주민들이 지난 10월부터 석달 동안 만든 공예품이다. 국내 대표 탄광촌인 고한읍의 주민들이 엘이디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체류형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이 지역은 석탄산업 합리화 조처 이후 대체산업으로 국내 유일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가 들어섰다. 하지만 오히려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폐·공가가 늘어났고, 골목은 쓰레기가 넘쳐나는 등 침체기를 겪었다.
‘빛으로 깨어나는 함백산 야생화’를 주제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18번가 골목길에서 ‘엘이디야생화 공예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정선군 제공
소멸 위기에 처한 18번가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주민들이 ‘마을호텔’을 추진하면서다. 한 건물 안에서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기존 호텔과 달리, 마을호텔은 길과 골목을 따라서 관련 시설이 유기적으로 들어선 곳으로 잠은 숙소가 마련된 건물에서, 식사는 마을 식당에서, 차는 마을 찻집에서 마시는 식이다. 주민들은 이런 마을호텔 사업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2018 균형발전박람회’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상을, 국토교통부의 ‘2018도시재생 한마당’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에는 탄광촌 골목길과 함백산 야생화를 결합한 ‘골목길 정원박람회’를 추진해 행정안전부의 ‘지역골목상권 활성화 우수사례’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나무 한그루 심을 수 없는 작은 골목길을 함백산 만항재의 형형색색 야생화로 채운 이 박람회는 ‘주민’이 모든 과정을 주도해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 주도’ 골목길 정원박람회라는 찬사를 받았다.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빛으로 깨어나는 함백산 야생화’를 주제로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18번가 골목길에서 ‘엘이디야생화 공예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정선군 제공
하지만 관광객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낮에만 잠깐 이곳을 돌아보고 갈 뿐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마을은 다시 폐광지의 어둡고 적막한 골목길로 되돌아갔다.
주민들이 엘이디야생화에 관심을 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지역의 특색인 야생화와 엘이디를 결합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면 밤에도 관광객이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지금 마을 곳곳에 내걸린 엘이디야생화는 그 첫 시도다. ‘빛으로 깨어나는 함백산 야생화’를 주제로 이 마을 골목길에서는 내년 1월5일까지 ‘엘이디야생화 공예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엘이디 수업을 수료한 주민들은 앞으로 재능 기부 형태로 엘이디야생화 아카데미와 공예방을 열어 더욱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엘이디야생화 골목길을 만들 계획이다.
한우영 고한읍번영회장은 “이번 엘이디야생화 전시회는 행정에서 예산을 들여 전문가가 제작·납품해 전시하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주민들이 배워 직접 만든 작품들로 어두운 탄광촌 골목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