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강릉에 사는 ㄱ(64·여)씨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 남성은 울고 있는 여자의 비명을 들려준 뒤 “우리는 사채업자인데 딸이 친구 보증 5000만원을 섰는데 돈을 갚지 않아 납치했다. 지금 당장 돈을 갚지 않으면 장기를 적출해서 팔겠다”고 협박했다. 놀란 ㄱ씨는 급히 돈을 마련해 이 남성이 보낸 사람에게 1500만원을 건넸다.
자녀 납치를 빙자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당부된다.
강원지방경찰청은 사채업자를 사칭해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피해자 5명에게 7480만원을 갈취한 말레이시아 국적의 수거책 ㄴ(23·여)씨와 ㄷ(25)씨를 붙잡아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ㄴ씨 일당은 관광비자 등으로 국내에 입국한 뒤 강원도와 서울 등 수도권에서 보이스피싱 수거책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ㄴ씨 일당은 지난 17일 강원도 인제에 사는 67살 여성에게 전화해 여자 비명을 들려주며 “딸이 보증을 섰는데 빌린 사람이 갚지 않아 대신 데리고 있다. 돈을 갚지 않으면 죽일 수도 있다”고 협박해 980만원을 갈취했다. 또 같은 날 고성과 강릉에 사는 75살·64살 여성에게도 전화해 “딸을 납치했는데 5000만원을 주면 풀어주겠다”고 협박해 3500만원을 받아냈다.
경찰은 추적 수사를 통해 이들이 20여건의 범죄에 추가로 가담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는 동시에 범행을 지시한 일당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최근 자녀 납치를 가장해 피해자들에게 전화한 뒤 자녀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듯한 말투로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수법의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강원지역 납치빙자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7년 5건(1868만원), 2018년 5건(1520만원), 2019년 5건(2670만원) 발생했지만 올해 들어 4월 현재 벌써 4건(4980만원)이나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하며 당장에라도 어떤 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해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는 특징이 있다. 평소 가족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지인이나 학교, 직장 등의 연락처를 미리 확보해 이런 전화를 받으면 안전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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