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가 15일 오전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속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제공
강원도 삼척에 있는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동료 노동자들이 신속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재발방지를 위해 사고 때 사업주 등의 책임을 직접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는 15일 오전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망사고 한 달이 넘도록 원인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재발방지 대책도 없이 사고 공장설비가 재가동됐다. 노동자들은 죽음의 공장에서, 또 다른 죽음을 기다리며 일하고 있다.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삼표시멘트는 한해 수십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하지만 원인 조사나 설비개선, 안전조처 등 기본적인 대책조차 없었다. 평소 근로감독이 잘 이뤄졌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사고 뒤 제대로 된 보호조처가 이뤄지지 않아 당시 사고 목격 노동자 등 동료 노동자들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김진영 민주노총 동해삼척지부장(삼표시멘트 노동자)은 “당시 사고를 본 노동자 10명은 아무런 보호조처 없이 사고 장소에 매일 출근하고 있다. 급기야 한명은 ‘급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동료를 잃은 충격과 사고의 잔상 탓에 이들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13일 오전 11시9분께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홀로 작업하던 김아무개(62)씨가 합성수지 계량 벨트에 머리가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유연탄 대체 보조 연료인 합성수지를 투입하는 컨베이어 벨트 6호기로 김씨는 이날 새벽 4시부터 전체 설비 보수 계획에 따라 설비를 세운 상태에서 보수·점검 작업을 하다 갑자기 설비가 재가동해 사고를 당했다.
위험한 작업인 탓에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지만 김씨는 홀로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7호기에도 김씨와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동료가 있었지만 100여m나 떨어져 있었다. 사실상 김씨 혼자 점검 업무를 한 셈이다. 이 탓에 김씨는 사고 발생 2시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동료 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일명 김용균법) 무용론을 주장했다. 신현암 민주노총 강원본부 사무처장은 “시행 4개월을 맞은 김용균법은 사용자 단체의 요구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크게 후퇴해 유명무실해졌다. 노동계가 요구해온 ‘위험작업 2인1조’도 결국 법제화되지 못했다. 김씨와 같이 위험한 작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안전’을 지켜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전 원내대표가 발의했지만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 법안은 경영책임자와 기업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선 현장노동자나 중간관리자가 책임을 지고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이재형 민주노총 삼표시멘트 지부장은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의 재발 눈치 보기 속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멀기만 하다.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지 않으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일 수 없다. 삼표시멘트에 대한 현장 특별근로감독과 2인1조 근무 시행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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