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은 1948년 10월부터 1955년 4월까지 전남·북, 경남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충돌,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지역사회연구소 제공
29일 제정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 특별법)의 방점은 73년 동안 묻혀있던 진상을 규명하는 데 맞춰졌다. 정부 수립 초기 반공주의에 가려졌던 국가폭력의 실상을 드러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특별법은 지난 4월 국회 행정안전위 심의 때 원안보다 다소 후퇴했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조직 설립과 신고 조사, 보고서 작성 등 핵심 조항은 유지됐다.
특별법은 여순사건의 시기적, 장소적 범위를 명시하고 있다. 이 법률에서 여순사건은 “14연대가 제주4·3 진압을 거부한 1948년 10월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를 해제한 1955년 4월1일까지 여수·순천을 비롯해 전남·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충돌, 이의 진압과정에서 민간인 다수가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됐다. 이에 따라 진상규명의 시기와 지역이 한국전쟁 전후의 지리산과 남해안 일대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의 내용을 보면, 국가는 국무총리 소속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명예회복위)를 설치해 △진상규명과 진상조사 보고서 작성 △희생자와 유족의 심사·결정 △사료관·묘역·위령탑 건립 △집단학살지, 암매장지 발굴·조사 △의료·생활지원금 지급 결정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
명예회복위는 임기 2년의 위원 15명으로 구성하고, 위원장은 총리, 부위원장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맡는다. 명예회복위는 최초 조사 개시일부터 2년 동안 진상규명 조사와 분석 등 활동을 마쳐야 하고, 이후 6개월 안에 진상조사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조사 과정에서 조사대상자와 참고인에 대해 진술, 출석,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고, 3회 이상 출석에 불응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다. 특히 진상규명에 중대하다고 판단하고,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직권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2009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했던 사건 중 끝내지 못했거나 조사가 미진했던 사건은 다시 조사할 수 있는 길도 터놨다.
1948년 10월 여순지역에서 펼쳐진 토벌군의 작전 상황.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제공
명예회복위의 의결을 실행하기 위해 전남도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실무위원회도 구성된다. 실무위원회는 △진상규명 신고의 접수·조사 △희생자와 유족의 심사·결정을 위한 조사 △의료·생활지원금 집행 △명예회복위 위임 사무 등을 처리한다. 이로 인해 실질적인 신고 접수와 조사 등 결정 전 단계의 활동은 전남도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는 희생자를 위령하고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위령묘역과 위령공원을 조성하고, 사료관·위령탑 등을 건립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높이는 교육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또 국가는 희생자 중 계속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에게 의료·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게 했다. 다만 희생자의 범위를 사망자, 행방불명자, 후유장애자, 수형자 등 피해당사자로 설정하고, 유족은 지급대상에서 제외해 지급대상을 지나치게 좁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법은 공포 뒤 6개월 뒤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이런 시한 규정에 따라 올해 말까지 명예회복위의 조직과 역할을 담은 시행령과 실무위원회 운영을 구체화한 전남도 조례가 마련된다.
하지만 이날 통과된 특별법은 지난해 7월 소병철 의원 등이 발의했던 원안에 견줘 조사 기간을 3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유족들은 평화인권재단의 설립과 지원, 유족에 대한 의료·생활지원금 지급,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배제 등이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빠졌다며 향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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