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9일 제방 유실과 폭우로 수해를 입은 전남 구례군 구례읍 구례5일장에서 상인들이 폭우로 어질러진 가게를 정리하고 있다.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정부가 1년 만에 내놓은 2020년 8월 섬진강 수해원인 조사보고서를 놓고 전남 구례 주민들이 ‘책임 소재가 빠진 맹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구례 주민들은 수해 책임자가 명확하게 가려지지 않으면 또 집중 호우 때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26일 구례 주민들로 구성된 ‘섬진강수해극복 구례군민 대책본부’와 섬진강수해참사 피해자 구례군비상대책위원회’ 회원 50여명은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온누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종 용역 보고서는 중간 보고서와 달리 주요 원인이 빠져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섬진강댐 범람으로 피해를 본 전남 구례군 주민들이 26일 환경부가 주관해 수해원인 조사결과를 발표한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온누리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자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들은 “최종보고서는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표기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수해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수해원인 제공자인 한국수자원공사, 홍수통제소 등 정확히 원인 주체를 밝혀내지 못한 ‘책임 회피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조사 용역을 맡은 기관들이 사전에 수해 책임이 있는 한국수자원공사 등 국가 기관과 최종 보고서 내용을 사전에 조율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더는 국가를 믿고 수해 피해에 대한 배·보상 요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오늘에 이어 다음 달 3일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국가를 상대로 투쟁을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 주관으로 꾸려진 ‘댐하류 수해원인 조사협의회’는 수해원인 조사 용역을 발주해 올해 6월 중간보고회에 이어 이날 남원에서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용역은 한국수자원학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종합건설기술용역업체인 ㈜이산이 맡았다.
용역기관은 중간 보고서 종합결론에서 “지난해 8월 섬진강 홍수피해는 댐 운영 미흡, 댐·하천 홍수 연계 부재, 하천관리 부족, 홍수방어기준의 한계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 중앙정부, 지자체,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기술적·사회적·재정적 제약 등으로 인한 운영·관리의 어려움은 인정되나 홍수피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종합보고서 종합결론에서는 “댐의 구조적 한계, 댐 관리 미흡, 법·제도의 한계, 댐·하천 연계 홍수관리 부재, 하천의 예방 투자 및 정비 부족, 설계기준을 초과한 강우 및 홍수유입 등의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 국가(중앙정부 하천관리청 한국수자원공사 등)는 기술적·사회적·재정적 제약 등으로 인한 운영·관리의 한계는 있으나 홍수피해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몇몇 문장의 표현을 바꿨다.
김봉용 섬진강수해참사 피해자 구례군 대책위원장은 “지난해 수해는 수자원공사가 집중 호우를 무시하고 섬진강댐을 사전 방류하지 않다가 새벽에 갑자기 과도하게 방류하며 발생했다. 8분 전에야 주민에게 방류를 통보하며 피해가 커진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최종보고서에는 방류량이나 통보시간을 기준에 맞췄다고 나왔고 ‘한계’나 ‘간접적’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며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자원공사가 최종보고서를 사전에 조율한 것으로 보여 대통령이 직접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세워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한국수자원공사 홍보실은 사전 조율 의혹에 대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입장을 정리해 조만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8월7∼8일 섬진강 일대에 400∼500㎜의 집중 호우가 쏟아지며 제방이 무너지거나 강물이 넘쳐 전남 구례·곡성, 전북 남원, 경남 하동 등 하류지역에서 2147가구 4382명이 1635억원에 달하는 재산손해를 입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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