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전 사라진 실종자의 시신을 전북 김제의 한 고교 근처에서 경찰이 찾고 있다. 전북경찰청 제공
24년 전 서울에서 사라진 20대 여성을 살해해 암매장했다는 범인 등 진술이 나왔지만, 당시 관할 경찰서에는 수사개시 기록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가출신고에도 경찰이 실종자를 찾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정황이 확인된 셈이다.
전북경찰청 등은 9일 “1997년 서울 한 경찰서에 ㄱ(당시 28)씨가 사라졌다는 가족의 신고가 접수됐다. 과거 한 공장에서 일했던 적이 있는 ㄱ씨는 갑자기 주변과 연락이 끊긴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후로도 ㄱ씨 소재에 대한 제보는 없었다. 주민등록증 갱신 또는 휴대전화 개통, 신용카드 개설 등 생존 반응도 없었다.
미궁에 빠진 여성의 행방은 23년 만인 지난해 여름, 전북경찰청이 한통의 첩보를 입수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ㄱ씨가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뒤, 암매장됐는데 공범 중 한명이 입막음을 위해 주범에게 금품을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공범 2명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 6월 대전에서 주범 ㄴ(47)씨를 체포했다. 그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하며 ㄱ씨를 매장한 위치까지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범들은 살해 과정에는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9차례에 걸쳐 주검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전북 김제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했으나 아직까지 ㄱ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ㄴ씨 등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 개정이 2015년 이뤄졌지만 당시까지 시효가 남아 있는 사건까지만 적용되고, 공소시효가 지났던 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24년 전 사라진 실종자의 시신을 전북 김제에서 경찰이 찾고 있다. 전북경찰청 제공
처음 신고가 접수된 서울의 한 경찰서에도 당시 기록은 남아있지 않아, 이런 내용도 피의자 진술을 통해서 확인한 것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이 가족의 신고를 받았을 때부터 적극적인 소재 파악 등에 나섰다면, 피의자 검거와 처벌, 주검 확인 등이 지금보다는 순조로웠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최근에는 여성·청소년의 실종이나 가출 신고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확인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경찰서에서는 수사를 개시했다거나 여성의 소재를 확인했다는 내용의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책무는 끝까지 맡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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