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선정한 동학 농민군 행렬을 형상화한 동상 작품 모형. 정읍시 제공
친일작가 작품이란 지적을 받아온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동학 농민군 행렬을 형상화한 작품이 들어선다.
전북 정읍시는 현 전봉준 장군 동상을 대체할 작품을 전국 공모해 참여작품 16점 가운데, 가천대학교 임영선 교수의 작품 ‘불멸, 바람길’을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불멸, 바람길’은 고부현에서 봉기를 시작한 동학 농민혁명군의 행렬 이미지를 부조(평면 위에 높낮이를 만들어 표현), 투조(평면상에 불필요한 여백을 뚫어 표현), 환조(3차원의 입체 표현)의 기법으로 제작한 군상 조각이다.
동학의 인본주의 사상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도록 인물 배치를 사람인(人) 형상으로 했다. 작품은 특정 인물을 강조해 높은 좌대 위에 설치하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형식을 지양했다. 행렬의 선두에 선 전봉준 장군의 크기와 위치를 민초들과 수평으로 배치했다. 시는 “갓을 벗어버린 채로 들고 가는 전봉준 장군의 모습은 신분제 차별을 없애고 불합리한 모순을 개혁하려는 혁명가의 의지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진섭(오른쪽) 정읍시장이 새로 선정한 작품의 동상 모형을 살피고 있다. 정읍시 제공
시는 동상 재건립 추진위원회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 현상 변경을 신청할 예정이다. 현 동상은 이달에 철거하고, 새 동상의 제막식은 내년 5월11일 정읍에서 열리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식’에 맞춰 열 예정이다. 유진섭 정읍시장은 “동학농민혁명 사상과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이번 작품을 통해 역사의 한 장면에 시민들이 동참하고, 이름 모를 농민군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7년 10월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현 전봉준 장군 동상은 친일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제작했다. 동상 및 배경 부조 시설물은 높은 화강암 받침대 위에 짙은 청동색으로 높이 6.4m, 좌대 3.7m, 형상 3.7m 규모다. 김경승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어서 동학단체 등은 줄곧 동상 철거를 요구해 왔고, 정읍시는 시민과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동상 철거를 결정했다.
전북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적지 안에 있는 현 전봉준 장군 동상. 자료사진
정읍 황토현 전적지는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최초로 관군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역사적인 장소로, 1981년 12월 사적 제295호로 지정됐다. 정부는 황토현 전승일을 기리기 위해 오랜 논란 끝에 ‘5월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2018년에 제정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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