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 내 옛 전남도 경찰국 건물 앞에서 안병하 5·18 당시 전남도 경찰국장의 부인 전임순씨(왼쪽)와 아들 호재씨가 안 치안감의 추모식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남편의 행적이 이대로 잊힐 줄 알았습니다. 이제라도 광주시민이 알아줘서 감사합니다.”
9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옛 전남경찰국 앞에서 고 안병하 치안감의 부인 전임순(88)씨를 만났다. 그는 광주에서 처음 열린 안 치안감의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두시간여 동안 힘든 기색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한때 남편의 행적을 몰라주는 광주와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며 “이제는 광주가 진실을 알아주니 그간의 고생이 풀린다”고 했다.
안 치안감은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 6·25 전쟁 영웅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육사 동기들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참여를 권유했지만 그는 “군인이 무슨 정치냐”며 뿌리칠 정도로 원칙주의자였다. ‘본분을 지키는 것’을 신념으로 삼았다. 전씨는 “남편은 출세할 기회도 있었지만 정치를 멀리했다”며 “자상했지만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1962년 11월 총경으로 경찰에 특채된 안 치안감은 서울, 부산, 경기도 등에서 근무하며 시위현장에 나섰다. 현장에서도 그는 시민과 현장 경찰의 안전부터 챙겼다. 1979년 2월 전남도 경찰국장 부임 후 1980년 5월 ‘서울의 봄’이 왔을 때 안 치안감은 박관현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과 평화적 시위를 하기로 협상하며 마찰을 빚지 않기도 했다.
9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안병하 치안감의 33주기 추모식에서 정행진 서화가가 안 치안감을 기리는 대형 붓글씨를 선보이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1980년 5월18일 0시, 계엄사령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경찰도 계엄군과 함께 시위 강경진압에 나서라고 명령했다. 이번에도 안 치안감은 “경찰 지휘관이 선두에 서서 시민을 보호하라”고 지시하면서 신념을 지켰다. 그리고 이튿날 광주시내 경찰서에 있던 무기를 31사단으로 옮길 것을 명령했다. 4·19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5월25일 광주진압작전 이틀 전이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과 광주를 방문했다. 이 사령관은 “경찰이 무기를 들고 옛 전남도청 진압에 앞장서라”고 압박했다. 안 치안감은 “어떻게 경찰이 시민에게 무기를 사용할 수 있냐”며 거부했다. 이 사령관은 그와 육사 동기였다. 다음날 그는 직무유기 혐의로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갔고 고문수사가 8일 동안 이어졌다. 안 치안감은 그 와중에 부하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6월2일 스스로 사임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전두환(90)씨는 2017년 4월 펴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은 시위 조기진압에 실패한 안 치안감의 무능함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비판을 샀다.
9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 내 옛 전남도 경찰국 건물 앞에서 5·18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던 안병하 당시 전남도경 국장의 33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결국 안 치안감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증인 출석을 앞둔 10월10일 세상을 떠났다. 아내 전씨는 “남편은 풀려난 후 ‘먼 훗날 역사가 말해줄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때 일부러라도 물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전씨는 너무 뻔뻔스럽다. 언젠간 거짓말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5·18 보상법에 의한 5·18 관련 피해자, 2003년 5·18 유공자, 2006년 순직 경찰로 인정됐다. 그가 재조명된 것은 2017년 5·18 관련 과거사 정리에 나선 경찰청이 안 치안감을 ‘제1호 경찰영웅’으로 선정하고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시키면서다.
안 치안감의 아들 호재(62)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5·18 때 광주시민과 부하 경찰,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점을 괴로워하셨다. 아버지를 따르다 고초를 겪은 나머지 경찰분들의 업적도 재평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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