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선생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살아야 하는 것, 그것은 선생에게 주어진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형벌입니다.”
불모지에서 대안학교를 만드는 일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대안교육 1세대 운동가 김창수(65) 경남 함양 온배움터(옛 녹색대학) 교수는 지난 8일 “따지고 보면 누가 내게 선생이 되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필요한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것을 그 누군가의 ‘명령’으로 알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후원으로 최근 펴낸 <선생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는 ‘선생’을 화두로 삼아 대안·생태교육을 실천해 온 그의 교육 에세이집이다.
김 교수가 평생 선생의 길을 걷게 된 동인은 ‘마주침’이다. 광주고를 갓 졸업한 그는 전북 고창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오가던 보육원 아이들과 만났다. 1977년 늦가을부터 1년 남짓 보육원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고, 이후 교회학교 교사도 했다. 김 교수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인도주의적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3년부터 3년 동안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등공민학교인 장성 삼동중 교사로 일했다. 니힐의 <섬머힐> 교육사상에 심취해 자유교육에 몰입했던 시기다. 그는 “삼동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훗날 세개의 대안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고등공민학교 폐지정책이 추진되자 그는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1987년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진학했다. 서울 중앙고에서 1992년부터 역사교사로 근무하면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을 목격했던 그는 “그때 1년이면 전국에서 600명 넘는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자살을 했는데 계속해서 선생 노릇을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6년간의 제도권 교사생활을 박차고 대안교육운동에 나선 김 교수는 애초 생태이념을 바탕으로 중도탈락자들을 위한 학교를 구상했다. 하지만 1999년 3월 교사들의 대안학교 꿈이 모인 전북 무주 푸른꿈고등학교 개교를 앞두고 간경화가 발병해 전남 담양으로 요양을 떠나야만 했다. 1999년 10월부터 담양에 있던 한빛고등학교의 초빙으로 2001년 4월까지 교장으로 재직했다.
김 교수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경남 함양의 녹색대학과 인연을 맺었다. 녹색대 대학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6년 동안 김 교수는 생태학·철학·사망학 등과 관련된 책을 읽고 연구하며 정리할 수 있었다. 이후 광주로 온 그는 ‘자기성찰과 수행’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수도회와 성인 지혜학교를 운영했다. 당시 구성원들이 청소년 대상 철학·인문학 중·고통합과정의 6년제 학교를 설립하자고 뜻을 모았고, 2010년 개교한 지혜학교 이사장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죽음의 문전 앞에 설 정도로 건강이 악화했고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지혜학교를 떠났다.
김 교수는 온배움터로 이름을 바꾼 녹색대학으로 돌아가 다시 땅을 파고 있다. 그는 “나의 선생 역할은, ‘마주침’이 어느날 불쑥불쑥 찾아왔고 거기에 응답하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뇌과학에 기반을 둔 치육교육과 영성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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