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광주시 동구 지원2동이 사회적기업 필름에이지에 맡겨 진행 중인 마을영화 촬영 모습.
“‘29만원 고놈’은 사죄도 안 하고 죽었는데 저 사람은 양심이라도 있구먼.”
광주시 동구 지원2동 한 식당에 꾸며진 영화 촬영장. 식사 장면을 찍던 주민 배우가 혀를 끌끌 찬다. 지원2동과 전남 화순의 경계인 너릿재에서 숨진 채 발견된 노숙자가 5·18 당시 계엄군이었다는 가상의 소식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이 더해진다. “컷” 소리에 이어 배우들은 지원2동 행정복지센터 회의실에서 동네 안건을 논의하는 장면을 연기한다.
6일 오후 찾은 마을영화 <소원을 빌다>(가제) 촬영장의 모습이다. 영화 제작을 맡은 사회적기업 필름에이지 대표 윤수안 감독은 “주민 배우들 표정이나 몰입도가 생각보다 매우 좋다”고 말했다.
30분 분량 마을영화 제작에는 10대부터 70대까지 동네 주민 20여명이 배우로 참여한다. 주민 배우들은 지난달 첫 오리엔테이션 이후 매주 화·목요일 행정복지센터 3층 다목적실에 모여 연기를 배운 뒤 배역을 받았다. 지난 3일 첫 촬영에 들어간 주민들은 앞으로 6차례에 걸쳐 배우로 변신한다. 주연을 맡은 구희상(61)씨는 “5·18 때 저수지에서 함께 있다가 계엄군의 총을 맞고 죽은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역할을 맡았다”며 “처음에는 그냥 설레더니 직접 영화를 찍으니까 부담감도 커지고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영화엔 5·18 때 계엄군 학살이 자행된 ‘주남마을’의 아픈 사연에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든다.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뒤 산자락 자연마을과의 갈등, 통장선거를 둘러싼 잡음, 재개발을 두고 이어지는 찬반 논란 등이 영화에 담긴다. 주민 배우들은 텃밭을 함께 가꾸고, 그 밭에서 키운 배추로 함께 김장을 하면서 갈등은 풀어진다. 배주석 지원2동장은 “마을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제작하면서 주민들이 자긍심을 느끼는 것 같다. 주민들이 배우로 출연해 제작한 영화를 이달 말쯤 상영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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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필름에이지가 제작 중인 마을영화 <소원을 빌다>(가제)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