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 2층 전시실 모습. 5·18기록관 제공
“군인들이 두명을 끌고 오더라고요. 중사가 ‘이런 놈들은 다 죽여야 된다’면서 허리춤에서 칼을 뺐어요. 그래서 내가 ‘야 이 자슥아, 여기는 병원이다. 뭔 짓거리냐’고 하니까 다른 데로 끌고 가더라고요. 아마 데리고 가서 죽였을 거예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국군광주통합병원 군의관이었던 문장주(68)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문씨는 “병원에서 공수부대원이 시위자에게 살해와 다름없는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며 “한 총상 환자가 ‘저 좀 군의관님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15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구술채록 <15인 시민의 기억>을 누리집을 통해 공개했다. 이 책은 ‘집단 발포 및 실탄 분배’(조광흠·나경택·박주은·김내수), ‘헬기 사격’(박남선), ‘김대중 내란 음모 관련’(송선태·김상윤·차명석), ‘군문서 조작’(김강석), ‘암매장 관련’(양기남), ‘병원 등 상황’(오경교·문장주·이동춘·이정융), ‘보안사령부·광주505보안부대 공작’(나동식) 등 7개 분야로 나눠 시민의 기억을 기록했다. 5·18 당시 보안사령부 보안처 2과 군사정보과에서 소령으로 재직한 나동식(77)씨는 “전두환 최측근이었던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1980년 5월10일부터 광주에 머무르며 지휘를 했다”고 말했다. 나씨는 “5·18 한달 전부터 공수부대가 진압훈련을 했다. 5·18 이전에 민주화 시위 지도부에 프락치(내통자)를 심어 광주 고립을 유도했고 유언비어를 생산, 유포해 항쟁을 격화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펴낸 증언집 <15인 시민의 기억>. 5·18기록관 제공
전투병과교육사령부(상무대) 사진병이었던 김강석(64)씨는 5·18 직후 505보안부대 문서처리반에서 근무한 상황을 증언했다. 김씨는 “보안사가 가짜 조직도를 만들어 무기 피탈조 등을 짜맞추기 했다”며 “1980년 7~8월 1지구 인쇄소에 타자병, 군무원, 민간인 등 60여명을 투입해 한달간 타자 작업을 한 뒤 고급 재질의 5~6㎝ 두께 책 20권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상윤(74) 옛 녹두서점 대표는 계엄령 확대와 예비검속 과정에서의 고문 수사 등을, 문장주 국군광주통합병원 군의관은 5·18 직후 부상자 치료와 계엄군의 헬기 추락 상황을 들려준다.
책은 5·18기록관 누리집에서 무료로 전자책을 내려받거나 기록관 열람실에서 볼 수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