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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도 받지 못하고”…근로정신대 피해 첫 고발 박해옥 할머니 영면

등록 2022-02-17 15:37수정 2022-02-17 16:53

2018년 미쓰비시 상대 손해배상 승소
2015년 6월 박해옥 할머니가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을 승소한 후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제공
2015년 6월 박해옥 할머니가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을 승소한 후 소회를 밝히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제공

30여년 전 근로정신대(미성년 강제노역) 피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던 박해옥 할머니가 결국 사죄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은 “20여년 전 일본에서부터 긴 싸움을 해오신 박 할머니가 16일 오후 5시 지병으로 영면하셨다”고 17일 밝혔다. 이로써, 2018년 대법원에서 승소한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원고 5명 중 생존자는 2명(양금덕, 김성주)으로 줄었다.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박 할머니는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4년 5월 말 일본인 교장의 회유와 압박에 못 이겨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동원됐다.

박 할머니는 생전에 “일본인 교장이 회유하자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그러면 대신 부모가 경찰에 잡혀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에 마지못해 응했다”고 밝혔다. 할머니는 굶주림을 견디며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해방 후 귀국했다.

고인은 양금덕 할머니와 함께 1995년 8월 지역신문 인터뷰를 통해 근로정신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성적 학대)을 폭로한 것을 보고 용기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성숙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와 근로정신대 피해자를 동일시하며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박 할머니는 광주에서 조산원을 운영하며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이 인터뷰 이후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았다.

박 할머니는 명예 회복을 위해 1999년 3월 일본 정부·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8년 11월1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이듬해 일본 정부는 후생연금 탈퇴 수당 명목으로 99엔(한국 돈 1000원)을 지급해 박 할머니는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박 할머니는 다른 피해지 4명과 2012년 10월24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29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미쓰비시쪽은 3년이 넘도록 배상 이행과 사죄를 하지 않아 박 할머니는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할머니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특허권 2건에 대한 압류를 제기했고 지난해 12월27일 대법원에서 압류가 최종 확정됐다.

광주에서 살았던 박 할머니는 2019년 가을께 건강문제로 자녀들이 있는 전주의 요양병원으로 가면서 “건강을 회복하면 광주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끝내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고인은 생전 자신이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일제가 어린이들을 노역에 동원했다는 점을 크게 분노했다.

이국언 시민모임 대표는 “고인은 항상 ‘치욕스러운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반드시 미쓰비시는 사죄하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미래세대가 박 할머니의 용기를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전주 예수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8일 오전 9시다. (062) 365-0815.

고 박해옥 할머니가 근로정신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던 <전남일보> 1995년 8월19일치 인터뷰 기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제공
고 박해옥 할머니가 근로정신대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던 <전남일보> 1995년 8월19일치 인터뷰 기사.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제공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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