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진입로에 심어진 이팝나무. 광주 북구청은 ‘도시바람숲길 조성사업’을 진행하며 민주로에 심어진 이팝나무 374그루의 가지를 잘라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광주 북구청이 국립5·18민주묘지 진입로에 심었던 이팝나무들의 가지치기 작업을 진행해 올 5월엔 흰꽃이 만개한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5월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소복을 입은 것처럼 흰 꽃이 피는 이팝나무를 심었던 상징성을 고려하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국립5·18민주묘지(5·18묘지), 광주 북구청의 말을 종합하면 북구청은 이달 5일부터 5·18묘지 진입로인 민주로 2㎞ 구간에 있는 이팝나무 374그루의 가지치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 이팝나무는 1997년 국립묘지 준공을 기념해 광주시에서 희생자 추모 의미로 심은 것이다.
북구청은 올해 산림청이 주관하는 ‘도시바람숲길 조성사업’에 선정되며 예산 3억5천만원(국비 50%, 시비 50%)을 지원받아 민주로 연결 숲 조성공사에 들어갔다. 가로수로 심어진 이팝나무의 가지를 정리해 생육을 돕고 바람을 잘 통하게 해 온실효과를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또 꽃가루를 줄여 도로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고 도로에 떨어진 꽃으로 인한 미끄러짐 사고도 방지한다는 목적도 있다. 북구는 이달까지 가지치기를 마무리하고 7월30일까지 철쭉 2799그루, 조경수 ‘에메랄드그린’ 519그루, 이팝나무 8그루를 심은 뒤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5·18단체나 5·18묘지관리소 등은 북구청이 과도하게 가지치기를 했다고 지적한다. 은행잎 모양으로 잎이 퍼져 있었던 이팝나무는 현재 위쪽에만 잎이 남아 있어 일자형 모습으로 바뀌었다. 25일 고 한승헌 변호사의 안장식 때 앙상한 이팝나무를 본 추모객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이지현 5·18민중항쟁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은 “안장식을 갈 때 당연히 이팝나무가 풍성할 줄 알았는데 가지를 자르고 있어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나무를 위한 작업이더라도 시기가 늦췄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9년 5월 촬영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인근 이팝나무가 만개한 모습.연합뉴스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관리소장도 “이팝나무 꽃은 오월의 아픔을 상징하는 꽃인데, 굳이 5·18기념일을 앞두고 가지치기를 해야 하냐는 생각이 든다. 5월이 되면 수많은 참배객이 올 텐데 앙상한 이팝나무를 보고 실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5·18기념일까지 남은 기간을 고려하더라도 흰 꽃이 달린 풍성한 이팝나무 모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동범 전남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식물은 잎이 나올 때 꽃눈도 발달한다. 5·18기념일까지 20여일이 남아 있지만 가지치기를 많이 하면 꽃눈도 없어지기 때문에 이팝나무가 만개할 수 기간이 절대적으로 짧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희수 북구청 공원녹지과 담당은 “나무의 생육 상태를 고려하면 가지치기는 봄철에 해야 한다. 나무의 생장점과 전체적인 수형을 고려해 전문가들이 작업했다. 내년이면 더욱 풍성한 이팝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