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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창에 날아와 쿵 쿵…“새들의 죽음, 두고만 볼 건가요”

등록 2022-05-11 04:59수정 2022-05-11 08:22


야생조류 모니터링단 ‘새 삶 찾기’
광주전남서 넉달새 사체 749마리
상위법 없어 ‘테이프 조례’ 힘못써
“아파트 입주민들 참여가 큰힘 돼”
‘새 삶 찾기’와 ‘유어스텝’ 회원들은 지난 4월2일 광주시 광산구 쌍암동 힐스테이트리버파크 투명 방음벽 아래에서 새 16마리의 주검과 충돌 흔적을 발견했다. 유휘경 제공
‘새 삶 찾기’와 ‘유어스텝’ 회원들은 지난 4월2일 광주시 광산구 쌍암동 힐스테이트리버파크 투명 방음벽 아래에서 새 16마리의 주검과 충돌 흔적을 발견했다. 유휘경 제공

“방음벽 투명 유리에 새들이 부딪혀 죽어요.”

이른 아침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케이티엑스 송정역 인근 우방아이유쉘아파트 방음벽 아래 시멘트 바닥에서 오색딱따구리가 죽어 있었다. 유휘경(활동가명 희복)씨 등 ‘새 삶 찾기’ 활동가 2명이 죽은 새 2마리와 새들이 투명 방음벽과 충돌한 흔적 4곳을 웹페이지 네이처링에 기록했다. ‘새 삶 찾기’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광주·전남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시민모니터링단이다. 채식주의자 모임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뒤 8개월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새 삶 찾기’의 목표는 인간 편의를 위해 설치한 인공 구조물로부터 조류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들이 지난 1월부터 4개월간 현장조사를 통해 찾아낸 조류 사체만 749마리다. 방음벽(82%)이나 건물 유리창(14%), 유리 난간 및 투명 엘이디(LED) 전광판(4%) 등에 부딪혀 목숨을 잃은 새들이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에 새로 지어 입주 예정인 금호 로제비앙 아파트 투명 방음벽엔 일정 크기의 점 무늬가 인쇄돼 있다. 투명 방음벽에 폭 5cm, 높이 10cm 간격으로 사각점 테이프를 붙이면 새들이 구조물을 피해 날아갈 수 있다. 유휘경 제공
광주시 서구 금호동에 새로 지어 입주 예정인 금호 로제비앙 아파트 투명 방음벽엔 일정 크기의 점 무늬가 인쇄돼 있다. 투명 방음벽에 폭 5cm, 높이 10cm 간격으로 사각점 테이프를 붙이면 새들이 구조물을 피해 날아갈 수 있다. 유휘경 제공

활동가들이 제안한 예방책은 간단했다. 높이 5㎝, 폭 10㎝ 미만의 좁은 공간은 지나가려 하지 않는 조류의 속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씨는 “투명 방음벽에 세로 5㎝, 가로 10㎝ 간격으로 (점자형) 테이프를 붙이면 된다. 공간이 아무리 투명해도 크기가 작아 보이면 새들은 일단 피한다”고 했다.

문제는 행정과 예산이다. 방음벽을 설치하는 건설사나 입주민 단체에 테이프 부착을 의무화하는 법령이 없다. 그러니 투명 테이프 부착 사업을 하려면, 환경부 공모 사업에 응해 정부 지원금을 받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4월 광주시의회가 광역 단위에서는 처음으로 ‘조류 충돌 저감 조례’를 통과시켰지만, 투명 테이프 부착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상위 법령에 근거 조항이 없어서다.

조례가 있어도 제구실을 못하니 도처에서 사고가 그치지 않는다. 지난달 2일엔 광산구 쌍암동 힐스테이트리버파크 투명 방음벽에 새 16마리가 부딪혀 죽었다. 환경부 공모 사업을 따내 지난해 10월 조류 충돌 방지 조처를 했음에도 발생한 사고였다. 유씨는 “예산 부족 탓에 방음벽의 3분의 1가량에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를 붙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새들이 이곳에 부딪혀 떼죽음을 당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방자치단체의 후속 조처도 더디기만 하다. 광주시 기후환경과 쪽은 “정확한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올해 조류 충돌 실태 조사를 위한 용역을 발주한 뒤 차근차근 대책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 4월2일 광주시 광산구 쌍암동 힐스테이트리버파크 투명 방음벽 아래에서 시민들이 현장 답사를 하고 있다. 유휘경 제공
지난 4월2일 광주시 광산구 쌍암동 힐스테이트리버파크 투명 방음벽 아래에서 시민들이 현장 답사를 하고 있다. 유휘경 제공

결국 보다 못한 시민들이 나섰다. 전남 나주 노안남초등학교 교사 2명이 학생 29명과 함께 나주 공산면 복사초리삼거리 도로 방음벽에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를 부착할 계획이다. 이들이 테이프를 붙이려는 방음벽에선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새 103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신설 아파트 단지에 조류 충돌 무늬가 인쇄된 투명 방음벽이 설치된 것도 입주민들의 적극적인 요청 덕분이다. 광주시 소태동 무등산골드클래스 2차 아파트, 광주교대 앞 계림아이파크에스케이뷰 아파트, 금호 로제비앙 등 3곳이 이런 식으로 새들의 안전지대가 됐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유휘경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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