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이자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인 고 조아라(1912~2003) 여사.국가보훈처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뒤 참배한 묘소의 주인공 고 조아라 여사(1912∼2003)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조 여사는 광주 수피아여자고등학교 재학 시절 여자기독교청년회(YWCA) 활동을 하며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듬해 2월 여성 비밀결사 백청단을 결성해 농촌 계몽과 인재 양성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1933년 이일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백청단의 실체가 드러나 1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36년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다 또다시 1개월 동안 수감됐다. 해방 뒤엔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인회를 이끌었고 1947~1983년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에서 총무와 회장으로 일하며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1980년 5·18 항쟁이 일어나자 조 여사는 수습대책위원으로 나서 군 철수, 연행자 전원 석방, 군의 과잉진압 인정, 사후보복 금지 등을 요구했다. 조 여사는 내란음모 혐의로 붙잡혀 징역 3년형을 받고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형 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2007년 5·18유공자로 인정됐고 2013년 세상을 떠난 뒤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018년에는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윤 대통령은 조 여사 묘역과 함께 행방불명자묘역(10묘역)도 들렀다. 이 곳에는 5·18 당시 실종된 광주시민 69명의 가묘가 있다. 이 중 문미숙(당시 10살)양과 박태식씨 묘비 앞에서 윤 대통령은 고개를 숙였다. 문양은 계엄군이 발포를 시작한 1980년 5월21일 광주 동구 학동에서 어머니 등에 업혀 있다가 어머니가 총에 맞아 쓰러진 후 행방불명됐다. 박씨는 1980년 5월20일 조카를 찾기 위해 광주 북구 전남대 정문 앞 시위현장에 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광주시가 5·18보상법에 의해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모두 78명으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무명열사묘역에서 이 중 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난 뒤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광주/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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