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영결식에서 유족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그대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소. 광주의 진상을 밝히고 민주주의가 꽃피도록 노력한 그대의 공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편하게 쉬길 바라네.”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60년 지기이자 민주화투쟁 동지였던 박석무(80) 전 국회의원은 31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에 참석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정 이사장과 박 전 의원은 1964년 6·3 한·일회담 반대운동 때 만나 평생 가깝게 지냈다.
정 이사장의 5·18민주국민장 장례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박 전 의원은 “고인은 한평생 민주투사의 길을 걸었고 지난해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올해 5·18 기념행사 상임위원장을 맡아 기념사업을 이끌다 누적된 피로가 끝내 목숨을 앗아갔다는 생각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이날 오후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1-149)에서 영면에 들었다. 5·18단체는 정부에 정 이사장의 국민훈장 추서를 건의하며 정신을 계승할 계획이다.
장례위는 이날 오전 8시30분 발인식에 이어 오전 9시30분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 앞에서 영결식을 열어 고인의 생애를 조명하고 추모하는 자리를 가졌다. 영결식에는 부인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 등 유족과 박 전 의원 등 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과 고희범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 민주화운동 단체 관계자, 시민,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31일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에서 고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의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고인의 장례행렬은 5·18기념재단과 전남대학교를 들러 후배 등과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안식처인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에 도착했다.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로 정 이사장과 함께 예비검속된 김상윤(73) 윤상원기념사업회 고문은 “1982년 특별사면으로 죽음에서 벗어난 동년 형님은 교도소를 나오며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다. 동년 형님은 빼어난 전략가도 아니고 명민한 기획자도 아니지만 자기가 갈 길이라면 뚜벅뚜벅 걷는 분이었다”고 추도사를 했다.
큰아들 재헌씨는 “아버지는 저에게 거대하고 어려운 존재였지만 손녀딸에게는 천사같이 다정다감했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도 5·18 행사에 참여해서 5월의 미래를 고민하시던 당신의 모습을 이제는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장남으로서 가슴이 많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 등 5·18단체는 전날 정 이사장의 장례식장을 방문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정 이사장의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를 건의했다. 모란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 유공자에게 수여하는 2등급 훈장으로, 군부와 유신정권에 저항했던 조성만 열사, 고 신현봉 신부, 고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받았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정 이사장님이 걸어온 길을 봤을 때 훈장 추서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정부에 건의했고 정부 관계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 이사장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5·18정신의 헌법전문 수록 등 남은 과제를 성실해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 이사장은 1964년 전남대를 다니며 한·일 굴욕외교 반대 시위를 하다 구속, 제적됐고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땐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엮여 사형선고를 받는 등 한평생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5·18기념재단 이사장과 올해 5·18민쟁항쟁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5·18기념사업을 이끌었으며 29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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