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때 좌익으로 몰려 숨진 전남 순천역 철도기관사 고 장환봉씨의 유족이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어 씨가 74년 만에 공무원으로 인정받았다며 최근 정부가 발행한 보훈보상대상자 등록증을 보여주고 있다. 여순민중항쟁전국연합회 제공
여순사건 때 좌익으로 몰려 총살당한 철도기관사가 74년 만에 공무원으로 인정받았다. 유족은 “늦었지만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여순민중항쟁전국연합회(연합회)는 “1948년 11월 여순사건 때 좌익으로 몰려 계엄군에서 처형된 철도기관사 고 장환봉(당시 29살)씨가 사건 발생 74년 만이자 무죄 판결을 받은 지 2년 만인 올해 5월 정부로부터 공직자로 인정받았다”고 3일 밝혔다.
유족이 공개한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서를 보면 “장씨가 사망한 지 70년 이상 지났고 여순사건,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록이 소실됐을 가능성으로 미뤄 고인은 철도공무원으로 직무수행 중 사망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나와 있다. 다만 “장씨의 사망이 국가의 수호나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관련이 없다”며 ‘순직’이 아닌 ‘재해사망공무원’으로 인정했다. 앞서 장씨의 유족과 국가보훈처는 장씨의 공무원 신분 여부를 놓고 다퉜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보고서를 보면 1945년부터 전남 순천역에서 철도기관사로 근무했던 장씨는 1948년 10월26일 순천역에 출근했다가 계엄군에게 붙잡혔다. 당시 계엄군은 반란군이 통근 열차를 이용해 여수에서 순천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어 장씨가 좌익에 동조했다며 내란과 포고령 위반 등의 혐의를 씌웠다. 장씨는 같은 해 11월30일께 순천역 인근 공동묘지에서 사살됐다. 함께 총살당한 철도원은 66명에 달한다.
장씨의 유족은 진실화해위의 보고서를 근거로 2011년 11월 법원에 장씨의 재심을 신청했고,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정아)는 “장씨의 사살 절차는 불법”이라며 2020년 1월 무죄 선고를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장씨는 좌익도 우익도 아닌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으로 국가 혼란기에 묵묵하게 근무했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의 판단은 달랐다. 2020년 5월 유족이 ‘고인이 공무수행 중 사망했다’며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 등록 신청을 하자 거부했다. 한국철도공사와 공무원연금공단에 장씨의 인사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유족은 2021년 9월 관할지청인 전북동부보훈지청을 상대로 행정심판위에 등록거부 처분 취소 청구를 신청했고 행정심판위는 올해 5월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장씨의 장녀 경자(77)씨는 “74년 만에 아버지가 철도기관사 공무원 신분을 확정받아 너무 기쁘다”며 “아버지와 함께 숨진 철도원 66명의 추모비를 세우고 후대를 위한 역사 교육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