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배달 라이더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허락 없이 화장실을 사용했다며 배달노동자를 밀쳐 다치게 한 음식점 주인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배달노동자조합은 이 사건 원인을 배달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혐오로 규정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21일 배달노동자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해 5월5일 오후 6시께 배달노동자 ㄱ씨는 광주의 한 음식점을 방문해 화장실을 사용했다가 음식점 주인 ㄴ씨와 마찰을 빚었다.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ㄱ씨는 평소 자주 들르던 음식점이었고 종업원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으나 ㄴ씨는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다며 화를 냈다. ㄱ씨는 혼잣말로 욕설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자리를 피하던 중 ㄴ씨가 오토바이를 밀쳐 넘어졌다. ㄱ씨는 전치 2주 부상을 당했고 오토바이는 부서져 수리비 100만원이 나왔다.
ㄱ씨는 ㄴ씨가 사과하지 않자 노조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의 도움을 받아 ㄴ씨를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ㄴ씨는 재판 과정에서 범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ㄱ씨가 당시 매장에 있던 어머니에게 욕설한 것으로 오해했다”고 항변했다.
지난해 2021년 12월17일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노재호)는 “ㄴ씨는 허락 없이 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오토바이를 운행 중인 피해자를 폭행해 죄질이 무겁다. 다만 상황을 오해해 우발적으로 범행했고 반성하고 있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지난달 19일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승철)도 “피고인은 원심선고 뒤에도 피해자에게 용서받거나 합의하지 못했다. 원심의 형이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ㄴ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노조는 향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음식점 업주 등을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과 화장실 제공 등에 대한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배달노동자에 대한 멸시와 혐오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한다. 재발 방지와 노동자 보호를 위해 앞으로도 강력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ㄱ씨를 지원한 민변 광주전남지부 소속 박인동 변호사도 “오토바이를 운행하는 피해자에게 유형력을 행사하는 등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다”며 “이번 판결이 사회적 약자인 배달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갑질,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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