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열차 놓는다고 얘기 나온 지는 꽤 되았제. 환경파괴 걱정들을 많이 하던디, 이건 멀쩡한 산 깎아서 길 내는 것하고는 다르댜. 있는 도로 우에다가 철길을 놓는 거라 수십년 된 나무 잘라불고 산 파내고 허는 일은 없다고 그러드만.”
지난달 18일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삼거리에서 만난 주민 이아무개(84)씨가 논란이 한창인 ‘지리산 산악열차’에 대해 입을 열었다. 퇴직 공무원인 그는 “환경오염이 없는 전기로 움직이는데다, ‘대한민국 1호 산악열차’의 상징성이 있으니 잘 될 것으로 본다”며 “대의를 위해서 찬성한다. 다른 주민들도 대부분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니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도로에 궤도를 놓으면 주민들의 차량 통행도 제한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명확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제대로 정보를 알려주는 주민설명회가 그동안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산악열차 추진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이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삼거리 근처에 걸려 있다. 박임근 기자
도로변엔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 명의의 펼침막이 나부꼈다. “주민도 열차만 타라는 게 교통기본권 보장? 산악열차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고기삼거리는 왕복 2차선 도로인 지방도 60호선과 지방도 737호선이 만나는 곳으로 2026년 준공 목표로 추진 중인 산악열차 시범구간의 시작점이다.
평일인 탓인지 오가는 차량은 많지 않았다. 삼거리 모퉁이에 ‘고기리산장’이란 간판을 내건 민박집이 눈에 띄었다. 토종닭, 단체예약 문의라는 빛바랜 글씨가 영업을 접은 지 시간이 꽤 흘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주인과 대화하려고 안을 살폈지만 출타 중인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산장 앞 전봇대에선 인부 2명이 전선 보수작업을 하고 있었다.
남원시는 지난 6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시행하는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에서 우선협상대상 지방자치단체로 최종 선정됐다. 8월 초 남원시가 낸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산악열차) 시범사업 추진’이란 보도자료를 보면, 시는 업무협약을 구체화하고 운송시스템을 검증하는 등 후속조치에 착수한 상태다. 남원시가 산악열차를 추진하는 가장 큰 목적은 관광수입 증대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다. 변변한 산업단지도, 특출난 관광자원도 없는 내륙 시군이 그나마 해볼 수 있는 게 지리산이란 경관자원을 활용해 방문객을 유치하는 개발사업이었던 것이다.
남원시가 처음부터 지리산 산악열차에 꽂혔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케이블카였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과 환경부의 제동으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가 어려워지자, 2013년 산악 전기열차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명분도 그럴듯했다. 이미 놓여 있는 지리산 관통도로 위에 궤도를 깔아 산악열차를 운행하면 내연기관 차량이 발생시키는 소음과 오염물질 배출을 줄여 자연생태 보존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폭설과 결빙이 잦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차량 통행이 빈번하게 제한돼 산간 주민들의 교통기본권이 제한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구실이었다.
실제로 차를 몰고 산악열차 계획 구간을 운전해보니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하산길에는 몇차례 아찔한 구간이 있었다. 노면이 얼어 있다면 사고 위험이 커 보였다. 30년 전인 1992년 7월에 고기삼거리 인근에서 난 사고가 떠올랐다. 승객 10명을 태운 승합차가 정령치에서 내려오다가 도로 아래 계곡으로 굴러 9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사고였다.
10년째 진행되고 있는 지리산 남원 산악열차 추진 일지.
남원시의 구상은 2019년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통해 어느 정도 구체화된 상태다. 2020년부터 2028년까지 남원시 주천면·산내면 일대에 1102억원을 투입해 13㎞ 길이의 궤도를 2단계에 걸쳐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1단계는 시범노선(고기삼거리~고기댐) 구간 1㎞, 2단계는 실용화노선(육모정~고기삼거리, 고기댐~정령치) 구간 12㎞다. 전 구간 기존 도로를 활용하고, 열차 운행이 없을 때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매립형 궤도(트램)를 사용하며, 전력선 없이 배터리로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남원시는 산악열차가 놓일 경우 생활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이들이 주천면 고기리·덕치리 4개 마을 주민 324명(181가구) 정도인 것으로 파악한다. 시 담당자는 “몇차례 설명을 드리긴 했지만 주민 전체가 모이는 대규모 설명회는 없었다. 사업에 대해 속속들이 아시는 분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주민 차량의 통행 제한 여부다. 남원시는 통행 제한이 외부 차량에 대해서만 적용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 관계자는 “주민 통행과 관련해 규정이 아직 정립된 상태는 아니지만, 폭이 8m인 왕복 2차로 중 1개 차로에 열차 궤도를 매립형으로 놓기 때문에 차량과 열차의 병행 통행이 가능하다. 열차 노선이 개통된 뒤에도 주민 차량에 한해 통행할 수 있게 할 방침”이라고 했다. 남원시가 지난해 10월14~15일 고기삼거리(지방도 737호선)에서 조사한 교통량을 살펴보면 이틀간 767대에 그쳤다. 남원시를 지나는 14개 지방도 가운데 가장 적은 통행량이다.
지역 환경단체 회원들이 주축인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는 남원시의 구상이 정교하지도 솔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대책위는 “사업제안서(계획안)를 살펴보면 엉성한 부분이 많다. 시범구간 1㎞를 먼저 추진한 뒤 다음 단계인 실용화로 이어지지 못하면 시범구간에 고철 덩어리를 덜렁 갖다 놓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고 했다. 단선 궤도로 열차가 교행을 못하기 때문에 운행 횟수가 제한된다는 점도 대책위가 산악열차의 경제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대책위는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해야 하고, 공공성 확보를 통한 재원 마련 대책을 세워야 하는 등 제도적으로 정비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장효수 지리산산악열차반대 남원대책위원장이 지난 8월18일 산악열차 예정 구간인 전북 남원시 주천면 고기삼거리 주변에서 예정 구간을 가리키고 있다. 박임근 기자
장효수 지리산산악열차반대 남원대책위원장은 “주민들 대부분은 산악열차가 운행되면 자신이 사는 곳의 도로 통행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친환경이라고 (시는) 주장하지만 무게가 150t이나 되는 열차를 운행하려면 대규모 공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남원시에서 스위스 산악열차를 성공 모델로 제시하는데, 이동수단이 드물었던 19세기와 다른 이동수단이 있는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더욱이 사계절 만년설이 뒤덮인 스위스 융프라우와 눈이 점점 오지 않는 이 지역을 같은 조건으로 비교하는 것은 과대광고일 뿐”이라고 했다.
‘지리산산악열차 반대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7월 남원시청에서 산악열차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대책위 제공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주민 이윤성씨는 “몇년 전 도로 결빙구간에 열선을 놓자고 제안했는데 비용 문제를 들어 수용하지 않았던 시가 막대한 돈이 드는 산악열차를 운행하겠다고 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주민의 교통편익을 명분으로 삼는데 우린 지금 이대로가 차라리 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리산을 자주 찾는다는 주민 채현진(54)씨도 “개발 자체를 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를 후손에게 물려주면 좋겠다. 주민의 동의 절차도 밟지 않고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우려스럽다”고 했다.
남원시는 주민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산악열차 사업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백두대간에 인접한 지자체들은 관광 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급하게 동시다발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다. 환경단체가 우려하는 소음과 야생동물 피해 등에 대해선 시범사업 구간 운영을 통해 사업의 경제성 문제와 함께 철저히 검증·보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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