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변 폐비료공장 건물 위에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유칠선 박사 제공
“인자 머리도 안 아프고 살 만혀. 옛날에는 메스꺼운 냄새 땀시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
지난 15일 오전 장점마을 주민복지센터에서 만난 할머니들로부터 마을의 변화상을 들을 수 있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장점마을은 2000년대 들어 주민 수십명(2019년 환경부 발표 기준 33명)이 집단적으로 암에 걸려 이목을 집중시킨 곳이다. 2019년 11월 환경부는 마을 주변 비료공장에서 배출한 유해물질과 암 집단 발병 간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이 주민복지센터는 문제가 된 비료공장과는 불과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복지센터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동생활홈과 함께 식사가 가능한 식당, 운동기구가 있는 다목적실, 샤워실과 찜질방을 두루 갖춘 2층짜리 건물이다. 센터 바로 옆에는 1차 진료가 가능한 보건진료소가 지난 3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만난 김양녀(80) 할머니는 “골다공증으로 다리가 아파 보건소에서 약 타서 먹고 있다”고 말했다. 정앵자(81) 할머니는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마을에서 생산한 고추와 배추 등은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저수지 주변에서 천연기념물 원앙을 비롯해 물총새가 확인됐다. 유칠선 박사 제공
지금은 폐쇄된 비료공장 쪽으로 길을 잡았다. 왼쪽에 작은 저수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 저수지는 2018년 8월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주민들은 “공장의 오염물질이 저수지에 흘러들어 물고기들이 폐사했다”고 주장했다. 비료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최정녀(73) 할머니는 “비료공장 건물을 보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고 했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저수지는 수질이 양호해 보였다. 주변 숲에선 끊임없이 새소리가 들렸고, 종류를 알 수 없는 새들이 저수지 상공을 선회했다. 4년 전 물고기가 집단 폐사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날은 보지 못했지만 지난 12일에는 저수지 주변에서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황조롱이, 수리부엉이가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마을 개울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 3마리가 발견됐다. “이제는 생태 마을로 변신했다”라는 주민들 말에 수긍이 갔다.
지난 12일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변 폐비료공장 안에서 수리부엉이 털갈이 모습(왼쪽)과 배설물(오른쪽) 등 서식 흔적이 발견됐다. 유칠선 박사 제공
지난 12일 비료공장 주변에서 원앙 20여마리를 발견한 건 지역생태연구가 유칠선 박사다. 유 박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료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악취나 연기, 침출수 등 환경오염 원인들이 사라졌다. 덕분에 다양한 조류들이 서식할 수 있게 됐다. 공장 주변 저수지와 인근에 참나무들이 많아 먹이활동을 하기에 용이한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변 저수지 위를 새들이 날고 있다. 오른쪽 하늘색 건물이 2017년에 폐쇄된 비료공장으로, 저수지에서 120m가량 떨어져 있다. 박임근 기자
비료공장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안을 살펴보니 새 깃털과 배설물 등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2001년에 들어선 이 공장은 집단 암 발병의 원인 제공자로 지목받아 2017년 4월에 가동이 중단됐고, 그해 말에는 비료관리법 위반 등이 적발되면서 문을 닫았다. 2019년 환경부가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이 이 공장에서 불법으로 사용한 담뱃잎 때문이라고 역학적 관련성을 밝힌 뒤, 익산시는 그해 11월 이 공장을 매입했다.
장점마을의 변신에는 전북도와 익산시의 노력도 한몫을 했다. 2019년 12월 주민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전북도와 익산시가 각각 절반씩 예산(총사업비 231억원)을 부담해 저수지 및 인근 논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공장 내 매립 폐기물을 치웠다. 노후 가옥의 슬레이트 지붕 철거 등 마을 환경 개선에도 힘썼다. 전북도 관계자는 “이제 하수처리시설 설치와 비료공장 터 활용 두가지만 빼면 당시 약속했던 주민지원 대책을 대부분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익산시 장점마을 주민복지센터. 그 옆에는 올해 3월에 개관한 보건진료소가 있다. 박임근 기자
최재철(61)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장은 “암으로 희생된 주민들을 잊지 않기 위해 비료공장 일부에 기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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