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상무관에 설치한 정영창 작가의 ‘검은 비’ 작품.5·18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주검을 안치했던 옛 전남도청 앞 상무관(무술훈련장)이 수년전 설치된 대형 예술작품 처리 문제로 떠들썩하다. 복원 공사를 앞두고 작가와 광주시 등이 작품 존치를 놓고 대립하면서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행사위)는 22일 광주 동구 전일빌딩245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영창(65) 작가는 상무관에 설치한 ‘검은 비’ 작품을 조속히 회수해달라”고 촉구했다.
행사위는 “정 작가는 전시 기간이 끝나면 작품을 반출, 철거하기로 약속했지만 어겼다. 내년 옛 전남도청 원형 복원사업이 시작될 예정인데, 작품으로 인해 오랜 숙원사업이 방해받지 않도록 조속히 이전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행사위는 그동안 수차례 정 작가에서 작품 회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일부 언론이 부정확한 사실을 보도해 광주시민에게 정확한 경위를 설명하기 위해 이번 간담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행사위는 2018년 제38주년 5·18기념행사의 하나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정 작가를 초대해 상무관에 가로 8.5m, 세로 2.5m 크기 ‘검은 비’ 작품을 설치했다. 나무판에 오월영령과 생명을 의미하는 쌀알을 붙이고 검게 칠한 작품이다.
원래 전시 일정은 2018년 5월18일부터 6월17일까지 1개월이었지만 행사위 요청으로 같은 해 11월11일까지 전시 기간을 연장했다. 전시계약서에는 전시가 끝나면 작가가 작품을 회수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정 작가는 회수하지 않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정 작가는 2019년과 2020년에도 많은 시민이 상무관에 들러 ‘검은 비’에 헌화하며 오월영령을 추모한 만큼 작품 존치 여부는 광주시민 뜻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행사위, 광주시, 상무관을 관리하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관계자 등은 상무관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서 작품을 철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 작가는 2020년 광주시에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광주시는 상무관 복원공사가 시작하면 보관·전시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들은 9월과 10월 두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정 작가는 지난달 27일 광주시에 서한을 보내 상무관 벽면으로 작품을 옮기겠다고 했지만 광주시 등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광주시는 10월 면담자리에서 정 작가에게 올해 12월31일까지 작품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를 포함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 작가는 행사위와 광주시 등이 작품을 강제 철거하기 위해 여론조성을 하려고 이날 기자간담회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정 작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시 기간이 끝난 뒤에도 일부 시민은 ‘검은 비’ 작품에 헌화하며 작품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며 “기자간담회를 하려면 나를 포함한 당사자를 모두 불러 의견을 물어야 하지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이어 “작품의 존치 여부는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광주시민 의견을 물어 결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