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영화 <하이디 옷장>의 촬영 모습. 순창군 제공
전북 순창군에 사는 이주여성 10명이 옷에 얽힌 각자의 소망을 담아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이 <하이디 옷장>이다. 출연진 가운데 한명인 하이디가 운영하는 옷 가게 이름과 같다.
하이디는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이다. 순창에서 의류도매상을 운영한다. 처음엔 학교와 어린이집 등에서 비정규직 영어 강사를 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자리가 사라져 생계가 어려워지자 지난해 옷 가게를 열었다. 주변에선 “시골에서 무슨 옷 가게냐”고 만류했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면서 필리핀,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주문이 이어진다고 한다. 저녁 시간을 이용해 온라인 라이브 방송도 한다.
<하이디 옷장>은 순창에서 활동하는 이주여성 영화동아리 ‘좋은 친구들’ 회원들이 만들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이디를 위해 옷을 소재 삼아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회원들은 필리핀과 캄보디아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주축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평소 입고 싶었던 옷에 대한 작은 소망을 17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았다. 기획·촬영·편집에 든 시간은 2개월. 영화감독 여균동씨가 촬영과 편집에 도움을 줬다.
리타는 18살에 드레스를 입고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싶었지만 가난해서 드레스를 구할 수가 없었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발레리나가 꿈이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접었던 하이디는 영화 속에서 발레 옷과 슈즈를 신고 잠시 행복한 상상에 잠긴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예쁜 한복이 꼭 입어보고 싶었던 팔반니의 사연도 잔잔하게 가슴을 흔든다. 영화는 순창읍에 있는 작은영화관 ‘천재의 공간 영화산책’에서 11일 상영된다.
영화의 제목이자 한 회원의 옷 가게인 ‘하이디 옷장’에서 출연진 등이 함께한 모습. 순창군 제공
영화 제작을 도운 여균동 감독과 이주여성 출연진 등의 모습. 순창군 제공
이 영화동아리는 지난해 처음으로 결성돼 이국에서 하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그려낸 <좋은 친구들>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지난 5월 열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코리아시네마’ 부문 상영작에 선정됐고, 5월 인천에서 개최된 ‘제10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제작 비용은 사회적협동조합 ‘우리영화만들자’의 예산에다 순창군의 돈을 보태 충당했다. ‘우리영화만들자’의 김영연 대표는 “이주여성들에게 희망을 준다는 관객들 평가에 힘이 난다. 다른 지역으로도 이런 활동이 번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박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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