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탈출해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 남아니따양이 20일 설을 앞두고 새해 소망을 말하고 있다. 고려인마을 제공
우크라이나 무국적 고려인들이 한국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 난민 자격이 사라져 오갈 데가 없는 이들에게 동포 신분을 부여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고려인마을, 법무부 소속 광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 등의 말을 종합하면 법무부는 이날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온 무국적 고려인의 난민비자(G-1)를 여권 없어도 갱신해주라는 공문을 전국 출입국사무소에 보냈다. 이에 따라 체류 기한 종료가 임박한 국내 체류 무국적 고려인이 국내 체류 기한을 좀 더 연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들은 옛 소련 시절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당했다가 농지를 찾아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고려인 동포의 후손이다. 당시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은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소속 국가로 돌아가 국적을 발급받아야 했지만 시기를 놓쳐 무국적자가 됐고 후손들도 무국적자 신분이다.
지난해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옛 소련 신분증 등 한국 연고가 확인된 무국적 고려인에게 여권이 없어도 유효기간 1년짜리 여행증명서와 6개월짜리 단기 비자를 발급했다. 문제는 전쟁이 길어지면서 한국에 체류 중인 무국적 고려인들의 여행증명서와 비자 시효가 만료되면서 발생했다. 이들의 장기 체류 신청에 각 출입국사무소 쪽이 여행증명서 유효기간만큼만 비자를 연장할 수 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도 ‘무국적자에게는 여권 발행이 불가하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체류하는 무국적 고려인은 200~300명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처로 강제 추방이나 불법 체류는 피했으나 근본적인 한계는 있다. 이천영 고려인마을 공동대표는 “무국적자들은 조국에서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계속 비자만 연장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이들을 재외동포로 인정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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