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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 쓰들 못헌께”…가뭄 시달리는 남도, 해수담수화 대안될까

등록 2023-02-09 11:00수정 2023-02-09 11:10

기후변화 위기 탈출 ‘해수담수화’ 대안으로 부상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 설치된 소규모 해수 담수화 시설. 신안군 제공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전남 신안군 신의도에 설치된 소규모 해수 담수화 시설. 신안군 제공

“먹는 물도 문젠디, 물을 팍팍 쓰들 못헌께 쪼끔 불편하긴 하요. 그래도 작년 가을보다는 낫소.”

전남 신안군 신의도 주민 박준배(60)씨의 말에선 체념과 달관의 분위기가 배어났다. 신의면 주민 1500여명은 극심했던 지난해 가을 가뭄 때 지하수를 정수해 쓰는 수돗물에서 짭짤한 소금기를 느꼈다. 당시를 회상하며 박씨는 “염분 때문에 물탱크에 진득진득한 곱이 끼고, 부엌 쇠그릇에도 녹이 올라오더라”고 했다.

이후 신안군은 지난해 12월 4억원을 들여 이동식 해수 담수화 시설을 설치했다. 강기성 신안군 상수도관리팀장은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관정에서 퍼 올린 지하수에서 소금기를 제거해 재차 정수 처리한 뒤 하루 300톤씩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만에 최악의 겨울 가뭄을 겪고 있는 완도군은 지난해 5월 섬 2곳에서 시작한 제한급수를 금일·노화·보길·소안·넙도 5곳으로 확대했다. 소안도에선 환경부의 국내 첫 해수 담수화 선박인 드림즈호까지 출동해 지난해 12월3일부터 보름간 물 1800톤을 공급했다. 위남환 완도군 환경수질관리과장은 “담수화 선박까지 동원했지만, 이틀 급수에 나흘 단수 체제여서 주민들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전라남도는 현재 5개 시·군에서 64기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가동해 매일 물 3750톤을 공급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완도와 신안 등 2개 시·군에 150~300톤 규모의 담수화 시설 4기를 추가로 설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가뭄으로 인한 도서 지역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바닷물 담수화 기술이 기후위기 시대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해수 담수화는 섬이나 해안지역에서 바닷물을 식수나 생활용수로 쓸 수 있게 염분 등 각종 무기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가 개발한 강수확률 예측 그래프를 보면 한국은 1~3월 갈색으로 가뭄 신호가 강한 편이다.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 제공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가 개발한 강수확률 예측 그래프를 보면 한국은 1~3월 갈색으로 가뭄 신호가 강한 편이다.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 제공

광주의 주요 식수원인 전남 화순 동복댐의 저수율은 24.10%(2월5일 기준)로 5월까지 가뭄이 지속되면 6월 초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 제공
광주의 주요 식수원인 전남 화순 동복댐의 저수율은 24.10%(2월5일 기준)로 5월까지 가뭄이 지속되면 6월 초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 제공

바닷물 담수화에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광주·전남지역이다. 이 지역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최악의 가뭄으로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 기준으로 영산강 및 섬진강 유역의 누적 강수량(858㎜)은 예년(1371㎜)의 62.6%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광주시는 영산강 물을 취수해 하루 5만톤씩 용연정수장으로 공급하기 위해 지난달 긴급 공사에 들어갔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식수원인 전남 화순 동복댐 취수탑 아래에 고여 있는 사수(死水) 350만톤을 비상공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임동주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물운용총괄과장은 “작년 5월 같은 500년 빈도 가뭄이 올해도 발생하면 동복댐 물도 6월 초면 고갈된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가뭄이 지속되자 서구 덕흥동 영산강 둔치에서 농업용수인 영산강 물을 취수해 동구 용연정수장으로 보내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정대하 기자
광주시는 가뭄이 지속되자 서구 덕흥동 영산강 둔치에서 농업용수인 영산강 물을 취수해 동구 용연정수장으로 보내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정대하 기자

문제는 호남지역 가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상시적 추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국가수석대표를 지낸 윤원태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는 “서태평양 지역에서 3년 연속 라니냐 현상이 지속되면서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이로 인해 고기압이 자주 발생해 남부에 비가 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지구·환경공학부)도 “한반도에 정체된 고기압이 돔을 형성해 대기 상하층이 더운 공기로 갇히는 열돔 현상으로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사라졌다. 열돔 현상이 지속되면 북극의 찬 기운이 내려오질 않아 비가 잘 내리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 감소가 상수로 자리잡은 상황에선 저수지나 취수시설 확충으로는 해마다 반복되는 물 부족 사태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이다. 특히 전남지역은 서쪽과 남쪽이 바다와 면해 있고, 리아스식 해안의 특성상 해수와 접하는 면적도 넓다. 해수 담수화 시설을 지을 입지 조건을 두루 갖춘 셈이다.

김준하 교수는 “지속가능한 식수원을 확보하려면 마르지 않는 샘물이 필요한데, 광주·전남의 자연조건을 고려하면 해수 담수화 시설이 가장 유력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윤원태 대표도 “비상사태에 대비해 중장기적으로 물그릇을 키워야 한다. 광주시와 전라남도가 5천억원 정도를 투자해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갖추면 하루 10만톤 정도의 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하루 10만톤은 광주 하루 평균 물 소비량의 20% 정도다.

충남 서산시 일대 대산임해산업지역에 하루 최대 산업용수 10만톤을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최대 해수 담수화 시설 조감도.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충남 서산시 일대 대산임해산업지역에 하루 최대 산업용수 10만톤을 공급할 수 있는 국내 최대 해수 담수화 시설 조감도.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환경부도 전남 광양만권에 바닷물 담수화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다. 전남 순천 주암댐과 광양의 수어댐이 광양국가산업단지에 공급하는 공업용수 25만톤을 광주권으로 돌려 식수로 쓰고, 광양국가산단에서 사용할 공업용수는 담수화 시설에서 공급하자는 발상이다.

실제 담수화 과정을 거친 바닷물은 공업용수로 이미 사용하고 있다. 첫발은 2014년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뗐다. 광양제철소는 하루 2만7천톤을 처리할 수 있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완공해 공업용수의 10%가량을 충당하고 있다. 충남 서산시 일대 대산임해산업지역엔 국내 최대 규모인 하루 10만톤 공급 용량의 해수 담수화 시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1년 11월 착공한 이 공사는 2024년 8월에 마무리된다. 총사업비 2851억원 가운데 30%는 환경부가, 70%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부담했다. 박희만 금강유역본부 대산임해해수담수사업단 사업부장은 “입주 업체들이 산업용수를 구매하기로 협약을 맺고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물 공급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도록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지능형 워터 그리드 시스템(물 공급망 체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김준하 교수는 “물이 오가는 수로 시스템뿐 아니라 댐과 담수화 처리시설을 연결하는 정보통신망을 구축해 물이 필요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오후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해수 담수화 시설 운영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광양시 제공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오후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방문해 해수 담수화 시설 운영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광양시 제공

부산 시민단체들이 2018년 5월 기장 해수 담수화 시설의 추진 전반에 대해 감사원이 조사해 달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부산 시민단체들이 2018년 5월 기장 해수 담수화 시설의 추진 전반에 대해 감사원이 조사해 달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물론 담수화 시설이 물 부족 사태의 해법이 되려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만만찮다. 가장 시급한 게 주민의 수용성을 높이는 일이다. 국비·시비 등 1954억원이 투입돼 2014년 5월 완공된 부산 기장 해수 담수화 시설은 하루 2만5천톤을 수돗물로 공급하려고 했지만, 11㎞가량 떨어진 고리원전의 방사성 오염물질이 섞일 것을 우려한 주민들 반대로 2018년 1월 시설 가동을 완전히 멈춘 상태다. 한기설 환경부 물산업협력과 사무관은 “올해 말께 기장 해수 담수화 시설 활용방안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온 뒤 앞으로 시설 운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용역의 목적은 꼭 식수로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활용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성 문제도 풀어야 한다. 아무리 남아도는 게 바닷물이라지만, 그것을 담수로 만드는 데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실제 부산 기장 담수화 시설의 경우 담수 처리된 물을 인근 농공단지에 산업용수로 공급하려고 했지만, 하루에 생산하는 최소 물량보다 수요가 적어 그마저 포기했다. 이성기 조선대 명예교수(환경공학과)는 “담수화 시설은 설치비가 많이 들고 담수 생산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기 때문에 운영 부담이 만만찮다. 투자에 비해 수요가 적으면 자칫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대하 김광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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