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후 발견된 고교생 시민군 안종필(앞)과 문재학(뒤)의 주검. 2021년 ‘노먼 소프 사진전’에서 공개됐다. 전남도청복원추진단 제공
“학생독립운동, 4·19의거, 5·18민중항쟁 등 우리 역사 격변기에는 학생들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기록을 자라나는 10대들에게 물려주고 5·18의 진실을 알려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을 막았으면 합니다.”
27일 오후 광주광역시 금남로 옛 전남도청 별관에 머리가 희끗한 중장년들이 모였다. 43년 전 이곳에서 전두환 신군부 폭거에 맞선 학생 시민군들이 결성한 5·18민중항쟁 고등학생동지회(동지회·회장 최치수) 회원들과 고등학교 교사들이다.
동지회는 4년간의 작업을 마치고 이날 출판기념회를 열어 학생시민군과 희생자 사연을 담은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백산서당)을 선보였다. 동지회는 5·18 항쟁에 참여한 10대 학생 300여명을 30여명씩 묶어 후속 출간 작업도 할 계획이다.
대동고 3학년 동기 전영진의 죽음을 계기로 시위에 참여했던 이덕준(60) 동지회 상임이사는 “2019년 2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의 망언을 계기로 동지회를 결성했고 기억이 더는 희미해지기 전에 학생들의 기록을 남기자고 결정했다”며 “현대사회연구소가 1990년 발간한 <광주민중항쟁사료전집>을 기본 토대로 삼고 유가족이나 생존자 증언, 각종 기록 등을 교차 검증하다 보니 4년이나 걸렸다”고 설명했다.
책은 1부 ‘별이 된 소년들’, 2부 ‘시민군이 된 소년들’, 3부 ‘동지가 된 소년들’로 구성했다. 사망자 10명의 사연을 다룬 1부에는 헌혈을 하러갔다가 계엄군 총탄에 스러진 박금희(전남여상 3년), 광주 진압작전 때 도청을 지키다 나란히 세상을 떠난 문재학·안종필(동성고 1년) 등이 실렸다. 박기현(동신중 3년)은 1980년 5월20일 책을 사러 나갔다가 계엄군의 곤봉에 머리를 맞고 숨진 뒤 상무관 1번 관에 안치됐고, 김명숙(서광여중 3년)은 진압작전이 끝난 뒤인 5월27일 저녁 친구집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왼쪽 허벅지에 총탄을 맞고 ‘5·18 마지막 사망자’가 됐다. 민주주의 의식이 강했던 전영진(대동고 3년)은 부모의 만류에도 “조국이 우리를 부른다”며 시위에 나가 도청 앞 집단 발포 때 쓰러졌고 경찰을 꿈꿨던 박성용(조대부고 3년)도 울분을 참지 못하고 도청을 끝까지 지키다 산화했다. 또 집 뒷산에서 놀던 전재수(효덕초 4년), 화순으로 관을 구하러 갔던 박현숙(송원여상 3년), 도청 앞 집단발포 때 총상을 입어 10여간 후유증에 시달리가 세상을 떠난 백두선(살레시오고 2년)과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도 다뤘다.
2부에는 고등학교 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최치수(살레시오고 3년), 5·18을 계기로 학생·노동운동에 뛰어든 경창수(동신고 3년), 문종호(전남공고 2년), 이덕준, 김향득(대동고 3년), 김재귀(동일미래과학고 1년), 윤햇님(전남여상 3년) 등의 인생사가 담겼다.
3부에서는 박재택(영암 신북고 2년), 이삼자(영암고 3년), 김병용(강진 성전고 3년), 손철식(나주 원예고 3년)과 임희종 전주 신흥고 교장, 양건섭 신흥고 교사(5·18 때 신흥고 3년)가 ‘독재 타도’를 외쳤던 각 지역 시위 상황과 5·18 정신을 이야기했다.
책에는 노먼 소프, 힌츠페터 등 외신 기자들이 찍은 당시 사진과 기록을 실어 40여년 전 광주 모습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도 각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부록으로 전북 전주 신흥고에서 1980년 벌어졌던 ‘5·27신흥민주화운동’에 관한 증언과 사진도 실렸다.
1980년 5월27일 전주 신흥고 학생들이 비상계험 해제를 요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전주신흥고 누리집 갈무리
5·18 때 광주 대동고 교사였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27일 <5월, 새벽을 지킨 소년들> 출판기념회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 당한 제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80년 5월’ 대동고 교사였던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한때는 죽지 못하고 살아있다는 부끄러움에 제자들의 묘소를 찾지 못했다. 전영진 열사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너무 기가 막혔다. 5·18 재단 이사장을 하던 시절에도 전 열사의 묘지를 차마 방문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재작년에야 묘소 앞에 꽃을 놔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책을 보면 ‘자위권 발동’이나 ‘질서 유지’를 했다던 계엄군들의 거짓말이 낱낱히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