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전남도의회에서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이 기자회견을 열어 전남도의 납북귀환어부 지원 조례 제정을 환영한다고 밝히고 있다.주종섭 전남도의원 제공
1971년 5월20일 인천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기를 잡던 동림호 선장 신평옥(84)씨는 선원 8명과 함께 북한경비정에 의해 납치됐다. 이듬해 5월10일 풀려난 그는 간신히 고향 여수에 도착했지만 경찰에 연행됐다. 일부러 어로한계선을 넘어가 북한에 붙잡혔고 1년간 사상교육, 간첩지령을 받은 뒤 의도적으로 풀려나 국가보안법, 반공법, 수산업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는 재판에서 “당시 안개가 끼어 북한경비정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1973년 9월 대법원은 “북괴지역임을 알고 자의로 들어간 이상 북괴집단의 구성원과 회합이 있을 것이라는 미필적 예측을 했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해 징역 1년6개월을 확정했다.
신씨는 1974년 1월 만기 출소 이후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숨죽여 살았다. 하지만 억울함을 떨쳐내지 못했던 그는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지난해 10월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인용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신씨는 “마냥 재심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꼭 무죄가 나와서 나 같은 사람들의 억울함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남도의회가 뒤늦게 납북귀환어부를 위한 지원에 나섰다. 전남도의회는 지난 14일 제370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전라남도 납북귀환어부 국가폭력피해자등의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주종섭 도의원 등 43명이 발의한 이 조례는 진실규명, 재심 등 피해회복 지원, 지원센터 운영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그동안 강원도(2022년 3월), 경북도(2023년 1월), 강원 속초(2022년 4월)·고성(2022년 8월) 등 동해안 자치단체에서 납북귀환어부 지원조례를 만든 적은 있지만 서남해안 지역에서는 전남이 처음이다.
주 의원은 “피해자들은 강제로 납북됐고 구사일생으로 귀환한 뒤에는 수사기관에 의해 강제연행, 불법구금, 구타,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고 간첩으로 내몰려 수십 년 동안 감시와 사찰을 받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다”며 “이번 조례안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족의 상처가 치유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신씨 등 전남 납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은 성명을 내어 “서해안에도 납북귀환어부 피해자가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재심을 청구하거나 피해 사실을 알리는 당사자나 유가족은 미비하다”며 “조례 제정을 계기로 저희와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 용기를 내주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억울함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우리 피해자들에게 유무죄를 따져 물을 것이 아니라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1954~1987년 납북어부 현황에 대해 1987년 국무조정실은 459척, 3651명으로 추정했고 같은 해 치안본부는 459척, 3648명(서해 294척, 2121명)으로 밝혔다. 현재 통일부 누리집에는 납북된 어부 3729명으로 나와 있다.
김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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