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제1회 춘향제에 사용했다는 최초 춘향 영정(왼쪽)과 논란 끝에 2020년에 철거된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린 작품. 남원시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전북 남원에서 춘향 영정을 둘러싸고 갈등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3년 전 왜색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영정을 떼어낸 자리에 어떤 영정을 내걸지를 놓고 남원시·남원문화원과 일부 시민단체가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시·남원문화원은 제93회 춘향제를 시작하는 오는 25일 광한루원 열녀춘향사(춘향사당)에서 새로 제작한 춘향 영정 봉안식을 열고 영정을 공개한다고 24일 밝혔다. 새 춘향 영정은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와 경판본 <춘향전>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5월 단오일을 맞아 몸단장을 한 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오는 17살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이다.
김현철 작가는 “새 영정은 가로 94㎝, 세로 173㎝ 크기로 경남 진주에서 생산한 비단을 사용하고 물감은 자연에서 채취·생산한 염료와 석채(돌가루)를 주 안료로 사용했고, 전통 채색 화법으로 영정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춘향의 인물상을 묘사하기 위한 머리 모양, 저고리, 치마, 신발, 노리개 등 옷차림 전반은 복식 전문가의 고증과 자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남원 광한루원의 춘향사당의 전경. 남원문화원 제공
그동안 봉안됐던 2점의 춘향 영정이 1930년대 유행한 복식 형식을 띠고 있는 데 반해, 춘향가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18세기의 출토 유물을 근거로 당시 복식을 재현했고 필요에 따라 조형적 변화를 줬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억지 춘향을 만들어서 춘향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최초 영정 봉안을 촉구했다. ‘최초춘향영정복위 시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춘향이를 새로 예쁘게 그린다는 것은 꽃노리개 춘향, 억지 춘향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당은 신을 모시고 제례를 거행하는 곳이지 미술관이 아니다. 춘향의 넋을 말살하는 미인도는 영정일 수가 없다”고 밝혔다.
강경식 최초춘향영정복위 시민연대 대표는 “최초 영정은 평민의 옷을 입은 어사부인(평등), 태극 모양의 색깔인 붉은 저고리와 파란 치마(민족정신), 16살 춘향이가 아니라 변사또에게 항거한 열녀(항일)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지난 22일부터 남원 광한루원 앞에서 계속 항의하고 있다.
한편, 최초의 춘향 영정은 춘향사당이 세워졌던 1931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중에 일부가 훼손됐지만 남원향토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어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초춘향영정복위 시민연대가 지난 22일부터 전북 남원 광한루원 앞에서 최초 춘향 영정이 평등과 민족정신의 표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초춘향영정복위 시민연대 제공
남원시는 2020년 9월 제90회 춘향제를 앞두고 광한루원의 춘향사당에 걸려 있는 친일화가 김은호(1892~1979)의 춘향 영정을 철거했다. 김 화가의 친일 이력으로 그동안 시민단체 등이 지속적인 교체를 요구해왔다. 철거한 영정은 전신을 그린 미인도 형태의 초상화로, 1961년 김 화가가 그린 작품을 복제한 것이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